내가 사랑한 여자들

천주교 신부님의 아내가 된 내 여자친구

악나라 수호자 2023. 10. 30. 12:37

이제 그만 옷을 벗게, 더는 못 참아! K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K가 남자에게 재촉하기 시작한 지 일 년 되었다. 아빠를 찾는 아이의 천진한 물음에 변명하는 것도 임계점이다. 처음부터 아빠 부재의 메시지를 아이에게 주었더라면 내 여자친구는 신부님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혼 상대로서 부적격이다. ‘아빠 직장 때문에 한국에 계셔.’ 하는 여자의 한 마디가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 여자는 실수를 직감했다. 남자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3대째 가톨릭 집안인 남자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기도와 남자의 의지로 사제의 꿈을 키웠다. 남자는 하늘이 삼백 평만 보이는 깊은 산중의 오지에서 태어났다. 머리가 좋아서 서울의 가톨릭계 대학교에 미등록자 대신에 추가합격이라는 행운을 얻었다.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 서울의 유명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산골의 신화가 되어 개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얼굴이 준수하게 생긴 남자는 여자를 많이 만났다. 가벼운 만남이지만 사제가 되겠다는 자신의 앞날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염려됐다. 시골 출신의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 시골과는 외모가 다른 - 서울의 여자들을 물리칠 힘은 없었다. 한 여자와의 깊은 관계로 사제의 길과는 멀어질 즈음, 임신 중인 여자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는 큰 충격 속에서 생각했다. 하느님께서 빗나가는 자신에게 경고를 보내셨다고. 남자의 아버지는 대학교 내 성당에서 남자에게 얘기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무너지는 건 순간이야. 하느님이 두렵구나. 여자를 조심해. 여자, 아무것도 아니야. 잘난 여자, 못난 여자 없어. 시골 여자, 서울 여자 다 똑같아. 여자는 현실이고 세상이야. 남자는 졸업 후, 자연스럽게 수도원에 입회해서 사제가 되었다.

신부님, 나 임신했어요. 뭐라고? 너, 미쳤어! 미치다니요? 신부님! 아니, 그게 아니라 임신하면 나는 어떡해, 조심했어야지. 그게 조심한다고 되는 거야, 신부님! 여자의 도발적인 큰 목소리에 식당 안 주위 사람들의 호기심의 시선이 쏠렸다. 여자는 남자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캐나다에 유학 중이던 여자는 우연히 인근의 한인 성당에 들렀고, 고백 성사를 했으며, 관계가 소원한 K와의 불화 관련 신부님의 의견을 들었다. 여자는 여러 번에 걸친 K의 메일에 답변하지 않았다. 어릴 때, 몇 번에 걸친 K의 가정 폭력과 폭언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K, 그러나 지독히도 이기적인 K, 가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보단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가지는 K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은 왜 했어, 결혼이 뭔지는 알고 한 거야, 하고 K에게 대들었던 적이 있다. K는 자기에게 대든 여자에게서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게 대든 딸에 대한 충격이 아니라, 결혼이 뭔지는 알고 한 거야, 하고 내뱉은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K다. 훗날 K는 메일에 썼다. 그때 처음으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고.

남자는 옷벗을 생각이 없었다. 세상살이 보다 사제의 길을 가는 것이 좋다. 아니 쉽다. 성욕을 참는 인간적인 고민, 참기 어려울 때는 불편함과 죄의식을 감수하고 자위행위를 하는 것 이외는 특별히 불편한 게 없다. 사제? 소명이 있다면 해봄직하다.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도 않고, 자유롭고, 해외 여행의 기회도 있고, 봉사의 기쁨, 학문의 기쁨, 사회적 지위 및 권위 등 평범한 사람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이 있다. 남자의 부모는 남자의 사제직 수행을 최고의 행복이자 자랑으로 여긴다. 그날 여자와의 술자리만 아니었어도 남자의 길은 평탄했을 것이다. 여자는 캐나다에서 유학하면서도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한국에서 파견되는 한국 주재원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 수학이다. 캐나다에서 수학은 한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보다 레벨이 낮다. 그래서 한국인 수학 과외 교사가 인기를 누린다. 여자는 수학 천재였기 때문에, 캐나다 주재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고, 돈을 많이 벌었다.

남자의 소개로 조그만 단독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초대해서 가톨릭의 한 예절로서 거행하는 집 축성을 받았고, 감사 인사로써 남자와 저녁을 하면서 술을 먹은 게 화근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둘은 서로의 아픈 상처를 드러냈다. 남자는 대학 시절 임신했던 여자친구의 교통사고 소식을 털어놓았고, 눈물을 보였다. 여자는 남자를 안아 주었고, 남자는 여자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남자의 손이 얼떨결에 가벼운 티셔츠로 가려진 여자의 가슴을 스쳤다. 여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여자의 무반응이 남자에게 과감한 행동을 유발하게 했을까. 남자는 여자의 가슴으로 손을 넣었고,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에 온몸이 전율했다. 남자는 여자의 티셔츠를 젖혀서 정신없이 여자의 유두를 빨았다. 아파요. 천천히! 하면서도 여자의 탄성과 신음이 방안을 울렸다. 여자는 남자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가슴 쪽으로 세차게 당겼다.

여자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을 때 술병과 술잔과 여자의 팬티와 속옷과 옷가지들이 흩어져 있을 뿐 남자는 보이질 않았다. 그것이 남자의 마지막이었다. 나름 신실한 신자였던 여자는 출산을 고민했다. 가톨릭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신앙 때문도 있었지만, 여자는 낙태시킬 만큼 냉혹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낙태는 끔찍했다. 아들이 성장하면서 K에게 아들의 존재를 알렸고, K는 심사숙고했다.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을 속이는 이중 인격 사제의 옷을 벗기는 것, 천사 아이의 장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K가 아이를 키울 때는 몰랐던 것이 있다. 아이들은 천사다. 천사는 하늘에만 있지 않다. 천사 하나를 잘 키우는 것이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을 속이는 이중 인격 사제 하나가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 신부도 남자고 성관계를 하고 싶을 것이다. 사제이면서 성관계를 한 남자도 있을 것이다. 중세기에만 그런 사제가 있는 건 아니다. 수도자들 교육 강의에서 성경험의 일탈과 참회를 생생하게 증언한 어느 수도원장도 있었다. 인간이 다 그런 것이니까.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혼돈과 정신착란증에 걸릴 것이다. 인간의 내면은 신성과 짐승의 국경선에서 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예수님도 말했다. 죄가 없는 사람만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런데 아이가 있으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아이가 있으면서 사제 생활을 하는 것은 인간 두 얼굴의 초극단이다. 최고의 악이다. 사제 생활이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당연한 진리이다. 당연한 진리를 거역하려 했던 남자다.

남자는 여자의 재촉에 6년을 저항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다. 더 지체되어서는 안 될 시기지만 남자는 여전히 아이를 책임질 자세가 아니다. K는 남자가 근무하는 학교를 방문하려고 집을 나섰다. 여자가 남자에게 전화했다. 아빠가 학교로 가고 있어. 신부님을 만나는 게 아냐. 총장 신부님을 만날거야. 아이와 함께 가고 있어. 조용히 처리할 테니까, 걱정 마시고 준비나 잘 하세요,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