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여자들

팜므파탈 아나운서를 사랑한 중년 남자의 최후 ?

악나라 수호자 2023. 10. 30. 12:26

몸에서 기가 다 빠졌는지 정신은 몽롱하고 몸이 축 늘어진, 살아갈 동력과 방향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자신감과 의욕을 상실해 버린,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으스스한 고독, 방안을 부유하는 스산한 공기, 아뜩아뜩해지는 몸과 정신의 흔들림. 스멀스멀 밀려오는 현기증과 공허함. , 글을 쓰던 노트북을 급히 접고 그 위에 머리를 박았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가 들어와 등을 두드렸어요. 여보, 어디 아파요. 내가 말했어요. , 어 … 아무 것도 아니야. 당신이 알 바도 아니고. 이 정도면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 데 말이에요. 아내가 알 바는 당연히 아니죠.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거실로 나갔어요.

애초 모든 건 심장에서 출발했지요. 심장은 Y의 모습을 반복해 담았어요. 처음엔 그저,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거 같았어요. 길거리를 거닐다 어쩌다 마주친 그런 사람으로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파도가 시작되었어요. 근원을 알 수 없는 파도는 목전까지 다가와 출렁거렸지요. 조수의 법칙을 거역할 수는 없는 법. 파도를 피하기보단 환호하는 게 내 운명. 두 팔을 벌려 어서 오라 그대여, 나를 재물로 가져라. 자신 있게 나섰지만 심장은 파고를 견딜 수 없었어요. Y가 만든 파고는 내가 만나 본적 없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대응할 방법이 없었어요. 심장이 시리고 타들어갔지요. 바라봐 주지 않아도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삼백 육십오일 하고도 백 오십일 동안. Y를 보지 못할지 모른다는 압박을 받은 심장. Y는 심장에게 말했어요. 한 달 쉴 거예요. 심장은 생각했지요. 이제 안 나오는구나. 반을 변경하는구나. 수영이 힘든가. 무슨 일 있나. 전화번호를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 아쉬움이 해소되지 않은 심장. 그곳에서 생성된 현기증과 공허함이 몸 구석구석을 점령했지요. 심장은 봤어요. 경험했지요. 순간적으로 활활 타오르다가 물 한 박스에 쉬 꺼져버리는 거푸집 태우는 불을. 아리고 쓰리고 그러다가 숯덩이처럼 달아올라 타들어가는. 한 박스의 물로는 도저히 끌 수 없는 불. 심장은 그런 불을 만나 본적이 없어요. 지금까진.

 

도대체 이 불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쩌다 이런 불을 만났을까. 기억 회로의 전원을 켜자 Y가 활짝 피었어요. 내 앞에. 아니야, 다른 일에 몰두하는 거야. 잊어버려. 다시 올 수 없다면 잊어야 해. 내면에서 다른 가 말했어요. Y가 떠오르고 내면의 다른 떠오르는’ Y를 막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지요. 이천 십년의 첫날. 사실은 오늘 뿐만 아니라 한 달 전부터 그랬어요. ‘상사병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지요. 데스크용 컴퓨터로 갔어요. 노트북엔 인터넷을 연결해 놓지 않았지요. 글 쓰는 용도로만 사용하기 위해. 네이버 검색 창에 상사병이라는 단어를 쳤어요. 모든 자료를 뒤졌지요. 다음 검색창에서도 마찬가지 과정을 걸쳤고요. 겁이 났어요. 상사병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난 신앙인이라 그런지, 암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살아남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그런지, 애착하는 것이 없어서인지, 한 달에도 여러 번 죽음을 목도해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어요. 상사병으로 죽을 수 있다? 겁이 났어요. 왜 그런지 생각했지요. 답은 Y였어요. 죽으면 Y를 볼 수 없다는 두려움이 죽음을 겁나게 했어요.

그러면 물을 테지요. 아내와 자식들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은 없냐고요. 가족들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이죠. 난 국내 가장 큰 대기업 두 곳을 섭렵한 직장 간부였어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십 이년을 직장에서 보냈다는 게 기적이에요. 기적을 기적이 아니게 하려고 퇴직했고 사업을 벌였고 실패했고 방황하다 위암을 얻었지요. 두서너 달은 가족들도 동정의 눈길로 간호해 주었어요. 시간은 흘렀고 가족들의 귓속 얘기를 들었어요. 줄어드는 재산과 치료비 걱정. 오랜 간호에서 오는 아내의 짜증. 집을 떠났어요. 애물단지가 되기 싫어. 가족들은 못 이기는 척 보내 주었지요. 사년 만에 돌아왔어요. 아내에겐 남자가 생겼지만 아이들을 키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웠어요. 모르는 척 했지요. 사람에게 생기는 연애의 감정. 다스릴 수 없는 거잖아요. 사람의 마음은 간섭한다고 간섭되어지는 게 아니지요. 다른 남자, 다른 여자에게 생기는 은밀한 연애 감정을 들여다보는 기계가 있다면 온전한 부부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은 단 하나 없을 거예요. 적당히 속고 사는 게 인생이고, 사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모르는 척 속아주는 지혜지요.

인생은 연극. 연극을 잘 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에요. 인생이 연극이란 걸 모르면 피곤하죠. 인생의 본질을 모르니까. 그런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죠. 자기 대본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일했고 병을 얻었고 병은 오래갔고 가족들은 짜증을 냈고 집을 나가야했어요. 혼자서. 건강해서 돌아오자 가족들은 반겼죠.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 때문에. 투병생활 중 철학과 신학과 문학을 통해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했어요. 하산 후 답을 얻기 위해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과 문학을 깊이 공부했지만 완전한 답은 없었어요. 우주의 중심엔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 자기 안에 답이 있다는 것. 이거 하나는 명료했어요. 난 이걸 알았기에 역경을 이겼고 Y를 만났고 젊어졌어요.

 

, 신부가 되고 싶었어요. 수도원에 있는 내게 아내가 전화를 했어요. 임신을 했다고.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일 년 후 아내는 아기를 데리고 수도원을 찾아왔어요. 수도원을 나왔고 목욕탕에서 밤새워 울었고 결혼식장에서 울었죠. 생각하지요. 내 아들 맞아? 물을 필요가 없는 걸요. 인생은 연극이니까.

 

컴퓨터에선 내가 느끼는 증상과 얼추 비슷한 내용들이 쏟아졌어요. 눈에 띄는 몇 구절. 그리워하는 대상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면 상사병이 생긴다고. 치료방법은 대상을 만나는 것. 만날 수 없다면 잊어버리는 것. Y를 만날 수 없다면 잊어야 했어요. 잊기 위해선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리라고 컴퓨터는 말했어요. 내 맘에 드는 충고 하나. 병들어 죽지 않을 만큼 그리워하는 건 행복한 거라고. 인스턴트와 물질적 사랑이 판치는 세상에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난 검색창을 닫았어요. 내게 필요한 건 죽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것.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고 눕고 싶었어요. 불을 끌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지요. 자려는 게 아니니까. 이불을 깔고 누웠어요. 몸은 반듯하게. 두 다리는 가지런히 펴고. 양 손은 배위에 올려놓고. 왼손을 오른 손위에 포갰지요. 형광등 불빛이 사방을 비추었어요. 어지럽게 걸려 있는 한 쪽 벽의 옷가지들을. 다른 삼면의 벽에 가득 찬 책들을. 한쪽 책상위의 노트북과 다른 책상위의 데스크용 컴퓨터를. 부드러운 수건을 접어 눈을 가렸어요. Y의 얼굴이 어른거렸어요. ‘죽지 않을 만큼 그리워하는이란 구절을 마음에 새겼지요. 죽을 수 있는 상사병. Y를 힘들게 할 것 같다는, 어쩐지 무섭다는, 아름답기보다는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이런 사랑을? 헛웃음이 나왔어요.

Y를 처음 만난 건 이천 팔년 팔월이었어요. 수영을 처음 시작한 그달 언젠가 Y는 내 눈 속으로 걸어왔어요. 꽃무늬가 수놓인 화려한 분홍색 계열의 수영복을 입고서. Y는 사람을 끌어당겼어요. Y는 화려한 수영복을 즐겨 입었지요. 노란색 계열, 정확히는 검정 색이 훨씬 많은, 그러나 노란색이 부각되는 수영복 또한 즐겨 입었어요. Y와 똑같은 수영복을 입는 여자를 본 적이 없어요. 그 많은 여자들 중에서. 하루는 노란색 계열의 당신과 똑같은 수영복을 입은 여자를 보았지요. 기쁜 마음에 달려갔지만 당신이 아니었어요. 그 여자가 입은 수영복은 어울리지 않았어요. 난 중얼거렸지요. '그건 Y만의 수영복이야. 흉내 내지 마.' 수영 시작 전 스트레칭을 할 때 항상 살폈지요. 당신이 왔는지를 확인하느라. 스트레칭이 끝난 후, 상급반의 자기 레인으로 가는 당신을 바라보다가 초급 라인의 물속으로 뛰어들었지요.

내가 당신에게 결정적으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수영장 내 간이 음식점에서였어요. 난 습관적으로 시집을 가지고 다녀요. 짬짬이 독서하는 게 몸에 배었기 때문에. 몸에서 시집이 떠나면 불안해요. 그날 수영을 마친 후 간이음식점에서 시를 읽고 있는 데 당신이 지나가며 흘깃 나를 보았어요. 순간 나도 고개를 들어 당신을 보았는데 처음엔 몰랐어요. 당신인지를. 식당을 나오며 몇몇 여자 회원과 얘기하는 당신을 흘깃, 그러나 집중해서 보았는데 수영장의 화려한 그녀였어요. 수영장에서의 화려함과 달리 수영장 밖 당신은 있는 자체로서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뽐냈어요. 미인들의 공통점. 얄미운 짓을 많이 해서 도통 아름답게 봐 줄 수 없다는 것. 당신은 얄밉지가 않았어요. 사십을 넘어 선 것 같지만 아름다움과 청순함이 나이를 감추고 있는 듯. 약간 깊은 눈매. 까만 눈동자. 윤기 있는 얼굴 표면. 허스키한 듯 낭랑한 목소리. 날씬한 몸매. 당신이 사십은 넘었을 거라고 추정한 건 눈가에 잡혀진 엷은 주름이었어요. 한 발짝만 멀리하면 당신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워요. 눈가에 잡혀진 엷은 주름, 거기엔 당신의 여유와 관록과 겸손이 묻어났지요. 순간적으로 드러난 당신의 청순함과 아름다움, 눈가의 엷은 주름에서 오는 여유와 관록과 겸손이 조화된 형체. 그것이 내 마음을 열고 들어왔어요.

 

예전의 내 생각. 사랑은 주고받는 것. 틀린 말은 아니지요. 사랑의 이름은 계절의 변화만큼 변해왔어요. 사랑은 내가 살아온 햇수보다 더 많은 이름을 가졌어요. 사랑의 이름으로 다가간 사랑이 얼룩을 남기고 상처를 남기며 자취를 감춘 것 또한 늦가을 길거리에 널 부러진 낙엽만큼 많지요. 그렇게 사랑은 지구 도처를 돌아다니지요. 갖가지 이름과 형체와 향기와 자국을 남기면서.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영혼과 육신을 구했고,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영혼과 육신이 폐허가 됐지요. 내게 사랑의 정의를 내리라면. 사랑은 하는 것. 바라봐 주지 않아도 바라보는 것. 은하계의 별만큼 바라보는 것. 그러다가 그 사람의 그림자만 보아도 시리도록 가슴앓이를 하는 것. 숯덩이가 되도록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그러다가 참지 못해 옹골진 꽃망울이 피어나듯 심연에 품어왔던 말 한 마디 터졌을 땐 타버린 심장은 한을 풀고 재가 되는 것. 재가 된 심장은 사랑을 완성하는 것. 아름답도록 환한 사랑을. 이런 사랑은 마음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지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오십이 넘은 내게. 당신은 내 마음과 의식을 완전히 점령했어요. 크게 웃었지요. 성탄절 미사 때. 난데없이 당신이 나타났어요. 아기 예수의 거룩한 탄생이 아니라 마음에 자고 있던 당신이 깼어요. 더 이상 잠들지 않은 당신은 미사 시간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지요. 밖으로 나와서 나는 다시 큭, 큭 웃었어요. 지인들이 말했어요. , 좋은 일 있어.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그리 즐거워. 난 미소를 보냈어요. 어이가 없지만 생생히 살아 있는 나 자신을 향해. 아기 예수 보기가 민망했지요. 내 마음과 의식을 완전히 점령한 당신이지만 난 조급하지 않아요. 당신이 내게 자리 잡은 것만으로도 나를 살아있게 만드니까. 난 버릇이 생겼어요. 오른 쪽 다섯 손가락을 모아 주먹을 만드는. 그 주먹으로 심장을 탁, 탁 때리는 버릇.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깨어나는 당신을 막을 수 없어요. 당신이 깨어날 땐 심장이 아리고 쓰려요. 아리고 쓰린 심장. 언제부턴가 주먹으로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심장이 타기 시작한 걸까. 신의 도움이 있었을까. 타들어 가는 심장을 방치할 수 없었을까.

안녕하세요.”

 

그동안 마주치며 얼굴을 익혀왔지만 나나 당신이나 서로가 말을 걸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수영장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정확히 당신과 눈이 마주쳤어요. 그런 상황에서 얼굴을 돌리고 마음을 숨기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얼떨결에 당신에게 말을 건넸어요. “안녕하세요.”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고 인사였어요. 당신은 안녕하세요.”하고 내 인사를 받았지요. 당신의 인사는 사무적으로 들렸어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만. 첫 인사를 한 후 당신을 만나면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고 당신도 인사를 받았지요. 얼마 후 월반을 했고 당신과 같은 반이 되었어요. 당신과 함께 수영하는 것. 결국 숨은 뜻을 이룬 거지요. 당신과 같은 반이 되고 싶어 열심히 한 수영. 이걸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 물론 신도 알겠죠.

 

너무 힘들다, 싶을 정도의 강도 높은 수영스케줄을 소화한 후 드는 생각. ‘다 이루었다.’ 이건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죠. 강사의 지도에 따라 강도 높은 수영스케줄을 마치고 샤워를 끝낸 순간, 모든 걸 이룬 듯 행복감에 젖어요. 생기와 화색과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보여요. 거울을 통해서. 순식간에 그 얼굴에 먹구름이 낄 때가 있어요. 당신을 만나리라는 기대가 허물어졌을 때. 당신은 자주 결석을 자주 했지요. 당신이 없으면 수영장이 텅 빈 거 같아요.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럴 땐 기대하지요. 사우나만 하러 온 건 아닐까. 밖에서는 만날까. 기대감으로 탈의실을 빠져나와 두리번거리죠.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땐 샤워를 끝낸 순간의 화색과 생기 넘치는 얼굴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요. 집으로 가는 발목엔 큰 돌덩어리가 매달린 듯 무겁지요. 전화 목소리라도 들으면 위로가 되겠지만 그렇게 막역한 사이는 아닌 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불행이라면 하루가 지루하게 길다는 것. 다행이라면 그리움이 배가 된다는 것.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

 

오십이 넘은 내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기록으로 간직하고자 이글을 쓰지요. 이런 감정. 오늘, 지금 아니면 풀어내기 어려울 거 같아서. 휘발되기 때문이죠. 이글을 당신에게 보여줄까 망설여지네요. 내 의도와는 달리 당신이 부담을 느낄 가봐.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생겨요. 당신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당신에 대한 나의 감정, 일방적이지요. 일방적 감정이 나를 살려요. 상상력을 자극하여 문학 감성을 일으키지요. 정신의 젊음을 찾아요. 때문에 어떤 작가들은 의식적으로 사랑을 찾는다고 하네요.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인 척 흉내 낼 때가 있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내가 이 글을 당신에게 전달한다면 …그건. 내 사랑을 전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 행운아에게 내려지는 특별한 선물이죠. 새해 첫날, 밤새워 이글을 쓰는 남자의 열정을 생각해 보아요. 고마울 건 없겠지만 즐거운 일이겠지요. 웃음 지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즐겁지요. 여자에게는 특히.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게 없는 줄 알았어요. 하나가 있는 데. 수영장에서 얼굴을 보여주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당신은 내가 밤새워 이 글을 쓰는 열정보다 더 값진 일을 하는 거지요. 적어도 내겐.

세상을 쉽게 사는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한 가지 걱정은 있지요. 불행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내가 젊었을 때 알았던 여자. 서른이 꽉 차는 동안 남자 친구를 가져 본 적이 없었데요. 여자는 외모를 한탄하며 자살했어요.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옥상에서.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아픔을 같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지요. 비슷한 일은 인근에서도 일어났어요. 69살의 여자. 잘 나가는 아들 딸. 장군의 아내. 재산도 많았고. 외형적으론 잉꼬부부.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여자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렸죠. 여자는 우울증. 자식도 남편도 여자의 내면을 몰랐지요. 알 수 없는 건 당연하죠.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사람들의 원성. 하늘에 닿았어요. 내 생각은 사람들과 대척점에 있지요. 책임은 여자에게. 남편도 자식들도 여자의 깊은 내면을 안다는 건 불가능해요. 여자 자신만이 자신을 알지요. 여자의 최대 실수는 자신의 행복을 남편과 자식들에게 의존했다는 것. 냉정한 얘기지만 결정적인 해답은 자기 안에 있지요. 가족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때가 많아요. 내가 이걸 몰랐다면 당신을 향한 이런 글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흙이 되었을 테니까.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눈가에 낀 주름까지도 아름답게 보이는 자태를 가진 건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지요. 신은 많은 선물을 주지는 않아요. 공평하기 때문에. 물질만능사회에서도 아름다움을 선사받은 것보다 더한 선물은 없어요. 여자에겐. 아름다워도 사랑받지 못하는 아름다움, 얄미운 아름다움,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당신은 완전한 아름다움을 가졌어요. 마음과 목소리까지도.

 

이 글을 재밌게 읽어 보아요. 부담 느끼지 않고 심각하지 않게. 별난 남자네. 나에게 완전 빠졌나봐. 애를 더 태울까. 아니야, 그럼 죽을 거야. 사귀는 게 낫겠어, 하며 웃음 짓는 여유로써. 당신의 그런 웃음과 여유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난 것처럼 기쁘고 고마운 일이죠. 부담을 느낀다면 새해 첫날밤을 꼬박 새운 보람은 없겠죠. 당신에게 미안하니까. 미안해 당신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을 거예요. 결핍과 아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요. 내면에 응집된 그것들을 표현하고 승화시킴으로써 상처를 아물게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요. 관습과 제도에 억눌려 있는 무의식을 끄집어내요. 그것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지라도 글로 표현함으로써 무의식을 위로하지요. 글은 끝나가고 웃음 짓는 당신이 떠오르네요. 부디 재밌게 읽었으면. 난 이미 사랑을 이루었어요. 바라봐 주지 않아도 바라보고 있으니까. 시리고 아린 가슴앓이가 멈추질 않으니까. 심장이 타 들어가도록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죽음도 두렵지 않았는데. 당신을 못 볼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죽음이 싫어지네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건 내게 사랑하는 그 무엇이 없었다는 반증. 나 이외의 우주에 초연했던 삶. 당신이 흔들어 놨어요.

나를 미쳤다고 하지 마요. , 살아 있을 뿐이에요.

날 미쳤다고 해도 좋아요. 그러나 슬퍼하지 말아요. , 행복하니까.

아내가 아침밥을 먹으라고 문을 두드리네요. 문을 열어주지 않고 대답했지요.

배가 고프지 않아.

201011, 밤을 꼬박 새우며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창밖엔 눈이 온다. Y가 깬다. 시리고 아리다. 주먹으로 심장을 탁, 탁 때리며 마당으로 나간다. 눈을 맞으러. 아내 목소리. 어디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