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여자들

남자에게 처절히 배반당한 여자친구

악나라 수호자 2023. 10. 30. 12:18

세상은 믿는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지고한 사랑이 남녀 간에 존재한다고. 인간의 바보 같은 이 믿음은 진화된다. 이러한 믿음이 없었다면 세상은 정신병자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다. 지구는 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진실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결혼했다고 해서, 터널 속에 들이밀었다고 해서, 일심동체가 된다는 주장은 거짓보다 더한 거짓이다. 남녀 간에 일심동체가 된다는 믿음은 환상이다. 남자와 여자는 구조상 하나가 될 수 없다. 남녀는 비대칭 관계에 있다. 남녀의 섹스 행위는 상대방을 이용한 자위행위다. 남자는 여자를 섹스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이런 의미에서 남자는 짐승이다, 라는 명제는 성립한다. 대체적으로 남자는 여자를 섹스대상이 아닌, 전인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결여한 존재다. 이런 의미에서 남자는 미숙아다, 저능아다, 라는 명제는 성립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존재다. 이런 의미에서 남자는, 바보다, 무식하다, 철이 없다, 라는 명제는 성립한다. 여자는 여자에게도 타자로 머무른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하여튼 복잡하다. 여자마다 추구하는 대상과 목적이 다르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여자는 남자의 힘을 좋아한다. , 권력, 명예 등. 여자가 바라는 것은 남자의 성기가 아니다. 남자들은 착각한다, 여자도 남자와 같은 종류에 속한 다고, 남자의 성기에 집착한다고. 그런 여자도 있다. 성적인 것에 중심을 두는 동물은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 남자는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 완전한 사랑은 여자에게나 가능하다. 이러한 가설은 전복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남자는 여성화되고, 여자는 남성화되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은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인간은 헛것 아닌 헛것, 이루지도 못할 이상을 쫒아가다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에 이르러 이상을 이루는 인간이 있기는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존재한다. 적당히 미치면서 존재한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한남동으로, 그곳은 다녀온 지 오래되어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집에서 가까워 편한 건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니까. 아니지, 부천 상동으로, 그곳은 얼마 전 갔다 왔는걸. 인천 계양으로 갈까. 그곳은 짠돌이들이 많아 실속이 없어. 그럼 종로로 나가봐, 아예. 그곳은 선수가 많은 게 문제지. 그녀는 망설였다. 오랜만의 외출, 새삼스럽게 걸리는 게 많았다. 옛날이 좋았는데. 외출복을, 구두 색깔을, 짠돌이를 만날까, 바보를 만날까, 선수를 만날까, 잡념이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고, 여자는 그들을 맞이했다. 처음에 본 그곳은 별천지였다. 환상적이었다. 여신(女身)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런 곳이 있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공항 대합실에서 만났다. 이백 미터가 넘는 대교를 지나 북쪽으로 승용차는 달렸다. 조수석 앞쪽에 부착되어 있는 방향계가 ‘N’을 가리켰다. 북쪽으로 가는 왕복 이차선 도로 주변에는 듬성듬성 집들이 있었다. 대교를 지나 십 분정도를 달리자 조그마한 도시가 나왔다. 오른 쪽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빌라도 보였다. 눈을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빌라가 늘어섰다. 도로에 붙은 상가들이 짧게 늘어섰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오른쪽의 아파트 단지를 보았다. 왼쪽에는 야산이 푸르게 늘어섰다. 자그마한 도시를 빠져 나가는데 십분 정도 소요되었다. 승용차는 북쪽으로 계속 달리다가 왕복 사차선 도로로 갈아탔다. 도로 양쪽 옆에는 야산들만이 있을 뿐 마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주유소 하나와 군부대를 지나쳤다. 십 분을 지나 도로를 갈아탔다. 승용차는 왕복 이차선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다. 사위는 벌써 어두웠다. 산속 외진 길임에도 불구하고 차량통행이 빈번했다. 산길을 들어선지 삼십 분은 지난 것 같지만 마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둠속을 비집고 나온 산들의 실루엣만이 드러났다. 덜컥 겁이 났다. 방향계는 계속 'N'을 가리켰다. 북한으로 데려가는 건가.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잡아먹지 않을 테니까. 그의 짤막한 대답만이 들려왔다.

그녀는 우연히 그를 만났다. 어릴 때부터 골프를 배웠다. 대학생일 때는 골프에 미쳐버렸다. 결혼 생각은 없었다. 골프만 있으면 충분했다. 세미프로로서 골프 강사 생활도 했었다. 그러다 돌연 골프채를 놓아버리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핸드폰을 바꿔 버렸다. 아마 수백 통의 전화가 왔을 것이다. 아버지는 은행 지점장이었다. 아이엠에프시절 명예퇴직을 신청하여 삼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아버지는 가족들의 충격을 감안하여 퇴직을 숨겼다. 퇴직금 삼억을 가지고 주식시장으로 매일 출근했다. 몇 달 만에 삼억 원을 모두 날리고 이억 원의 빚까지 졌다. 엄마 몰래 사십 팔 평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삼억 원도 날렸다. 엄마의 친정 동생, 즉 삼촌의 보증을 서기 위해 아파트 등기부 등본을 열람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엄마는 배신감에 이혼을 신청했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법원은 엄마의 손을 들었다. 한꺼번에 밀려온 충격으로 아버지는 노숙자가 되었다. 유복하고 평온하게 자란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마약과 유흥에 빠지다가, 칠천 만원의 빚까지 졌다. 단시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유흥업소에 나갔다. 그곳에서 사십대 초반의 제약회사 사장, 그녀에게 골프를 한 수 지도 받았던 사장을 만났다. 사장은 골프보다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이었다. 예전에 그는 사장을 외면했었다. 그런 사람, 골프 가르쳐 달라고 해놓고선 밖에서 만날 수 없느냐는 둥 수작을 걸어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사장은 옛날 애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와 했다. 그 사장은 싱글 플레이어 수준의 그녀를 자주 골프장으로 초대했다. 용인, 양평, 일산, 제주도까지. 사장은 그녀의 골프 실력보다는 그녀의 몸매에 더 호감을 갖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잘 빠진 몸매는 뛰어난 골프 실력과 어우러져 매혹적이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으며 사장은 그녀의 빚을 모두 갚아 주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사장에게 몸을 주었다. 사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사장은 그녀를 자기 친구인 건설회사 사장에게 소개시켰다. 그 사장과도 역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골프를 쳤고 섹스도 나눴다.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십팔 평 아파트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건설회사 사장 역시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켰다. 바로 그에게.

 

그도 골프를 즐겼다. 몸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는 전의 남자들과 확연히 달랐다. 유흥업계의 거물인 그는 그녀를 사무적으로 대했다. 자기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았다. 자기의 신념만큼은 확실히 강조했다. 돈을 쫒아 지금까지 살아 왔다고, 아무런 후회는 없다고, 지옥을 가도 좋다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그러나 자식들은 자기와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 그의 과거에 대한 진한 회한을 느꼈다. 전의 남자들보다는 그가 더 인상적이었다. 돈을 벌 의향이 있는지를 확실히 물었다. 그녀가 뜸을 들이자,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가보라고, 더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말라고, 줏대를 가지고 잘살라고,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사업상 배를 타고 왔다는 것 이외는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좋아한다는 게 아니다. 결국, 무언가에 이끌려 공항에 나가겠다고 덜커덕 약속했다.

 

그는 가로등도 없는 구불구불한 어두운 산길을 잘도 달렸다. 많이 다녀 본 적이 있듯이. 그녀는 숨을 죽이고 조수석 등받이를 잡았다. 그가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묵묵히 운전만 했다.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각오해,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 지금이라도 원치 않으면 차를 돌릴 테니, 말해. 그의 단호한 음성은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한번 해보는 거야, 주사위는 던져졌어. 조수석 등받이를 꽉 잡고 있던 두 손을 떼었다. 몸을 뒷좌석 등받이에 기댔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어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왼쪽 다리를 오른 쪽 무릎위에 올려 다리를 꼬았다. 담배 있어요? 그가 아무 말 없이 답배와 라이터를 어깨 너머로 건넸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답배를 입에 물자 한결 마음이 안정됐다. 구불구불하고 깜깜한 산길을 한 시간 정도 달리자 갑자기 많은 차들이 주차된 마을이 앞을 가로막았다. 깊은 산중, 첩첩산중에 이렇게 많은 차들이. 그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로 양옆으로 주차된 차들의 행렬은 일백 미터 가량 되었다. 차량 넘버도 갖가지였다. 제주도 넘버만 빼고 모두 보였다. 도로 주변에는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늘어선 차량들에 비해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몇몇 보였다. 택시 운전사들이 택시에 기대어 서 있었다. 승용차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입구부터 벌어진 풍경에 그녀는 경악했다.

뭐 해?” “누워 있어.”

뭐하면서?” “자기 생각하면서.”

옷 입고 있어?” “위에는 입고, 아래는 벗고.”

, 위에는 입고 있어?” “, 배가 차잖아.”

아래는 다 벗었어?” “아니.”

그럼?” “팬티만 입었어.”

, 팬티는 입었어?” “자기가 벗겨 줄 알고.”

벗겨 줄까?” “, 자기는 옷 입고 있어?”

나야, 다 벗었지.” “자기 꺼, ?”

그럼, 아주 커.” “어머, 좋아라. 자기 거 먹고 싶어.”

어떻게 먹을 건데” “, 글쎄.”

자기 손, 어디가 있어?” “팬티 속에.”

뭐 하는데?” “자기가 안 해주니까.”

혼자 하는 거야?” “.”

내가 넣어줄까?”

남자는 병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노인의 목소리로 신음하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에이, 또 조루를 만났잖아. 이거 돈 안 되네. 그녀는 투덜거렸다. 이제, 몸을 그만 혹사시키고 요령껏 돈 벌어봐. 이젠, 단속이 심해 그곳도 힘들어질 거야. 어느 날 그는 그녀에게 사업체를 차려 주었다. 생각보다 돈이 되었다. 남자들이란 바보, 멍청이, 겉으로만 똑똑한 척, 한단 말이야. 사기를 쳐도 신고하는 놈이 없고, 이의제기 하는 놈도 없다니. 그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일 년 만에 이억 이상을 벌었다. 그녀는 이렇게 쉬운 사업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잠시 손을 털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남자들을 상대로 돈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야. ()과 악(),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큰 죄라도 적발되지 않으면 선이고,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재수 없게 적발되면 악이야. 그녀는 종종 친구들을 모아놓고 특강을 했다. 그녀는 돈맛을 알았다. 그녀가 남자들을 상대로 사업을 해서 돈을 축적하기 시작한 것은 별천지 같은 그곳을 떠나면서부터다. 그가 그녀를 그곳으로 데리고 간 것은 일종의 수련과정 이었다. 그곳에서도 돈을 많이 벌었지만, 몸이 고단했다. 그녀의 몸과 정신은 제법 단련되었다.

그는 그녀를 세상에 파견할 때를 맞았다. 그녀가 그곳에서 보고 배운 것은 많았다. 정치인, 법조인, 의사, 교수, 교사, 기능공, 회사원, 자영업자, 금융인, 예술인 등 각계각층의 남자들, 상기 리스트에 없다고 안심하는 남자들, 심지어 종교인까지, 대한민국의 다양한 남자들의 군상이 그곳에 정액을 뿌렸다. 남자들이란 자아-지이가 서는 한, 설혹 서지 않더라도 노소를 막론하고 숨어서 밝힌다. 깊은 산속, 욕정의 고향에서. 그곳에서 남자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쾌락을 즐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깊은 산속을 빠져나가, 산속 일은 까맣게 잊고 생활할 것이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어느 누구도 그 사람들이 깊은 산속을 다녀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부동산 사무실이 어디 있죠? 그렇게 많이 보이던 부동산 사무실도 막상 찾으려니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길을 가던 삼십대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의 머리는 짧아서 마치 군인이나 공무원으로 연상되었다. 그녀와 비슷한 키로 보아 일 미터 육십오 센티미터는 될 거 같았다. 남자는 반가운 표정으로, 제가 안내해 드리죠. 제 전공입니다. 근방에는 없고 조금 가야 합니다. 지금 세무조사 중이라 대부분의 부동산 사무실이 문을 닫았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남자는 근방에 주차된 차를 가지고 시내를 몇 바퀴 돌면서 말을 걸었다. 아하, 이걸 어쩌죠. 문을 연 곳이 보이지 않는군요. 지금은 제가 집엘 가봐야 하는데. , 됐어요. 제가 혼자 찾아보죠. 그게 아니라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전화번호를 서슴없이 주었다. 남자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남자는 이튿날 아홉 번을 전화했다. 하루가 지났다. , 어제 전화했었죠. 너무 미안합니다. 제가 핸드폰을 놓고 외출하는 바람에. , 그러세요, 난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지적회사에 다니는 남자는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을 과시하는 많은 얘기를 했다. 그녀는 술을 많이 먹었고 비틀거렸다. 예상대로 그는 그녀 어깨를 끼고 부축하려 했다. 이러시면 안돼요. 누구 시집 못가는 거 보려고 그래요. 오늘 즐거웠어요. 고맙습니다. 집에 늦게 가면 아빠한테 혼나요. 그녀는 쓰러지면서 두 팔로 살짝 남자의 목을 감았다.

 

이튿날도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저녁을 먹자고. 그녀는 약속했다. 스물한 번의 전화가 왔었다. 이튿날 그녀가 먼저 전화했다. 미안해서 어쩌죠. 어저께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연락할 경황이 없었어요. 남자는 안달했다. 오늘 저녁에 만날까요? 요즘 며칠 늦게 들어갔더니 아빠 성화가 대단해요. 오늘은 못 나가겠어요, 대신 제가 내일 저녁 대접하죠, 사과하는 의미로. 그날은 술을 먹지 않았다. 남자만 먹었다. 오늘은 왜 술을 먹지 않죠? 그녀는 남자를 차에 태우고 슬쩍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 목 단추가 풀린 그녀 가슴이 살짝 드러났다. 남자의 시선이 가슴을 찔렀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본 뒤 그녀 입술을 손으로 더듬으며 다가왔다. 너무 빨라요, 이러시면 다신 못 만나요. 그녀는 남자를 태우고 남자의 단독 주택 근방까지 갔다. 젖가슴이 훤히 보일 정도로 목 단추가 두 개 더 풀렸다. 남자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는데 남자의 손이 가슴으로 쑤욱 들어왔다.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집은 남자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저당권이 설정된 것은 없었다. 전형적인 직장인이었다. 남자는 매일 전화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 중의 하나는 남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예기치 않게 재수 없는 남자를 만나 그녀가 낭패를 당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대개 남자들은 그녀의 유혹에 무릎을 꿇었다. 정신 놓고 사는 남자들이 사업 잘하고, 돈 잘 버는 것이 신기했다.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여자는 남자를 지배한다는 말은 정말 잘 태어났다. 그녀는 변신을 거듭했다. 고소득자나 화이트칼라에게는 순진한 여자로, 저소득자나 노동자에게는 지적인 여자로. 처녀로, 이혼녀로, 유부녀로, 나이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중반을 넘나들었다. 유부녀인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고, 처녀인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다. 철칙이 하나 있었다. 총각은 절대 사절. 돈 많은 총각은 시건방져서 싫었고, 돈 없는 총각은 귀찮고 진부해서 싫었다. 돈 없는 총각들이 단골로 하는 말, 난 젊어, 기회가 많아, 전망 있잖아. 얼마나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얘기인가. 불확정성의 현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미래가 있단다, 얼마나 코믹한 대사인가. 젊음은 그들 한데나 좋은 거다. 그들의 젊음과 그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른 이유 때문으로라도 총각은 짜증난다. 제대로 하는 놈이 없었다. 걸핏하면 체외 사정이고, 들어와도 오 분을 버티지 못했다. 이렇게 짜증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돈이 안 되면 그거라도 좋아야 할 텐데. 남자가 벌거벗으니 도통 늙음과 젊음이 구분되지 않았다. 젊은이 같은 늙은이가 있는가 하면, 늙은이 같은 젊은이도 있었다.

 

그녀가 주연한 배역도 각양각색이었다. 카페 여직원, 유흥주점 호스티스, 노래방 도우미, 나이트클럽의 부킹 파트너, 순수한 가정주부, 커리어 우먼 등. 남자들은 너무 단순했다. 말을 걸거나 조금만 아는 척하면 자기에게 관심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남자에게선 정상적인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은근슬쩍 손을 잡으려는 것은 애교로 봐준다 치자. 결론은 그녀 터널 속에 들어오려고 환장한 족속들이다. 그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 본색이 드러났다. 그녀를 부추기는 척하다가 은근슬쩍 가슴으로 손이 올라왔다. 한 대 패주고 싶은 자세를 취하면 가슴에 올라왔던 손은 없어졌다가 또다시 올라오고, 끈질겼다. 길에 넘어지면, 업혀, 해놓고서는 엉덩이 깊숙한 곳으로 손이 쑥 들어왔다. 앞쪽이 아닌데도 말이다. 때와 장소, 앞뒤를 안 가렸다. 개가 따로 없었다. 많이 취해 정신을 놓으면 모텔로 데려갔다. 정신을 차려 정색하고 여기 어디야, 물으면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 너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솔직하고 참신해서 오히려 봐줄만했다. 그녀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대사다. 아아, 네가 너무 많이 취해서. 여기 데려다주고, 난 집에 갈 거야. , 여기가 어디야, 내 정신 좀 봐. 모텔인데, 네가 이리로 오자고 해서. 에이, 늑대 같은 새끼들, 평생을 늑대로 살아라. 그녀는 그런 남자들에게 쏘아붙였다, 마음속으로.

남자들은 그녀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데만 초점을 맞추었다. 남자들은 도대체 그녀를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짐승이 따로 있나. 그녀 한탄은 멈출 줄 몰랐다. 그녀가 술에 취하면서도 정신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있었다. 그녀를 따르던 남자가 있었다. 그녀도 그가 좋아졌다. 남자는 그녀를 갖고 싶어 했다. 그녀를 갖고 싶다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그녀는 카페에서 일했었다. 남자는 그녀가 퇴근 시까지 혼자 앉아 술만 퍼먹는 날이 많았다. 남자가 카페에서 삼 개월간 올려준 매상은 적게 잡아 천만 원쯤 되었다. 그녀는 그에게 몸을 주기로 생각했다. 어차피 그녀는 처녀가 아니고, 남자가 좋아진 마당에 선심 한번 베풀기로 했다.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때 혼자 밤을 보낸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퇴근 후, 회가 먹고 싶다, 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술을 많이 먹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남자는 이게 웬 떡이야, 하는 몸짓이었다.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순진한 남자가 그녀를 모텔로 데려가 헐레벌떡 그녀의 옷을 벗기더니 그것을 쑥 밀어 넣었다. 일을 끝낸 남자는 황급히 옷을 입더니 사라져 버렸다. 마치 전염병 환자 곁을 도망치듯 말이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들의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후, 그녀는 항상 경계 지점에 머물렀다. 경계의 지점, 그곳이 바로 사랑의 낙원이요, 사랑의 종착점이었다. 남자들의 수작은 뻔했다. 결론은 로마가 아닌 그녀 터널 속이었다. 그녀는 철저히 무장했고, 철저히 계획적이었다. 그녀가 지적회사에 다니는 남자에게서 여러 가지 명목으로 받아낸 돈은 오천만 원이었다. 그녀는 그 돈을 돌려줄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만, 남자 역시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남자에게 해준 것은, 고작 하룻밤 그녀 터널 속을 빌려 준 것뿐이었다. 남자의 자위행위를 위해서. 남자는 이후에도 여러 번 연락했다. 애절하게 만남을 청했다.

정말로 애처로운 남자도 있었다. 이삿짐센터를 운영한 L은 자신의 생계가 걸린 사다리차를 팔아 그녀에게 삼천만 원을 주었다. 그녀는 그의 행동거지에서 알 수 있었다. L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L은 자기가 부자라고 떵떵거렸다. 할 수 없이 그녀는 그를 벗겼다. 그녀에게 남자 하나 벗기는 것은 섹스하고 싶을 때, 섹스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결국 L은 이삿짐센터를 접고 택시 운전을 했다. 부자에겐, 삼천만 원, 오천만 원이 아무것도 아니다. 서민들에게는 그것이 전 재산일 수 있다. 전 재산을 걸고 여자를 쫓는 남자들, 불쌍한 남자들, 정신 나간 남자들이 많다. 여자만 조심해도 착실히 돈을 모아 중산층으로 살아갈 텐데, 남자들에 대한 연민이 들었다. 사업이 어려워, 이번에 인사사고가 나서 말이야, 당신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깊은 고뇌에 빠진 흉내를 내는 남편들, 유흥비로 가산을 탕진한 남편들이 둘러대는 거짓말을 믿으며 살아가는 아내들이 상상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가난이 찾아와도, 자식들의 학용품 값을 걱정하는 남자들조차 그것을 넣고 싶어 했다. 깜깜한 터널 속으로.

 

유리가게 M도 만났다. M은 오 개월 동안 바에 왔다. 일주일에 세 번씩. 그녀 터널 속으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녀는 항상 줄 것 같은 냄새를 풍겼다. 바가 끝나고 그녀 집이 아닌 다른 집 근처까지 M을 유인했다. 하지만 갑자기 전화가 왔다. 내일 봐, 오빠. 바쁜 척 택시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M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인테리어의 전면 교체였다. 무료로. 인테리어 비용은 이천만 원 정도. 그녀는 사장에게서 천만 원의 인센티브를 받고 바를 그만두었다. M은 그녀를 갖지 못했다. 그렇게 공들이고 말이다. 그녀는 M에게 오누이 관계로 지내자, 했다. 그녀에게 오빠가 없다고, 너무 외롭다고, 오빠가 있는 게 소원이라고. M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몸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닭살의 H,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다. H만 생각하면 닭살이 돋았다. 유치원생을 둔 H가 전화로 말했다.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오늘 우리 백일 기념이잖아, 처음 만났던 그 자리, 호수 공원이 보이는 창가 자리, 예약해 놓을까? 선물은 그거 있잖아, 그거 준비했어. 내가 얼굴 붉히며 사는 거, 알지. 색깔은 빨간 거, 괜찮아? 아니면 노란 거? 내가 자기 취향 알고 있으니 그건 나한데 맡겨. 알았지, 그녀는 H가 사준 오십 만원 짜리 핸드폰을 방구석으로 던져 버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구역질이 나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H는 그녀는 저녁을 먹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오늘이 당신 생일이라고. 아하, 이걸 어쩌나. 깜박했네. 집에 들어갈 때 고등어 한 마리 사가지고 갈 테니, 그리 알고 있어… 뭐, 외식하자고, 뽀뽀해 달라고, 이 사람이, 이제 미쳐가는 구만. 새삼스럽게 무슨 외식이야, 닭살 돋게. 이러지 마, 알았어? 그녀는 그날 H와 함께 일인 당 십만 원짜리 저녁을 먹었다. H가 사전에 약속한 것 이외에 이십만 원짜리 구두도 선물 받았다. 다시는 H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확히 서른두 번의 전화가 왔다. 너무 귀찮아서 문자 메시지를 넣었다. 한 번만 더 전화하면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두만강 아파트 칠백오동 이천 이호로 찾아갈 거야. 정신 차려, 알았어! 개자식아!

머리가 허연 칠십대의 노인들 칠팔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노인들이 노래방을 다 오다니, 난 의아하게 생각하며 가장 큰 방, 가장 아늑한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낯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특별한 대우를 해주고 싶었다. 젊게 사는 건 좋은 일이야, 멋있는 노인들이네, 중얼거리며 한 시간을 넣었다. 어떻게 노는가 보기 위해 그 방을 살짝 엿보고 있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음악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상해서 문을 열고 물었다. 왜 안 노세요. 아가씨, 여기 도우미 없어? 예에? 여긴 도우미 없는 가족 노래방인데요. 모르셨어요? 밖에 써 붙여 놓았는데. 전 할아버지들이 알고 들어 온 줄 알았는데. 노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이, 나가, 나가! 도우미도 없이 뭔 재미로 놀아.

 

그녀는 망설임 끝에 그가 있는 금산의 나이트로 차를 몰았다. 나이트는 붐볐다. 금요일이었다. 집을 출발하면서 까치에게 통보를 했다. 까치는 정중히 그녀를 맞이했다. 웨이터들에게 이미 소문이 났다. 그의 세컨드라고. 나이트는 지상 삼층, 지하 일층 건물이다. 지상 이층, 삼층은 주차장이고, 지상 일 층은 사무실, 연예인 대기실, 무용수 대기실, 특별 손님 대기실, 매점 등이 있다. 나이트는 지하에 있다. 나이트에는 다양한 크기의 룸이 이십 개가 있고, 삼십 평 정도의 중앙 무대가 있으며, 무대를 중심으로 오백여 명이 여유롭게 춤출 수 있는 홀이 있다. 까치는 삼십 명의 여자들을 관리했다. 여자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돈 안들이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여자들, 춤 잘 추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자들이다. 분위기 띠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이십 대 중후반의 백수 여자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삼십 대 중반의 가정주부들이다. 남자들의 품에 안겨 내숭은 떨 줄 알지만 춤은 못 춘다. 웨이터들은 남자들끼리 오는 손님들에게 빠른 몸놀림과 재치로 여자들을 번갈아 가며 부킹시킨다. 여자들에 따라서 일당을 받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되어 진다. 여자들을 통해 팔리는 양주 값만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것이 웨이터들의 수입을 결정한다. 요즘 들어 웨이터를 하기가 수월해졌다. 집단 창녀촌에 대한 단속으로 사창가가 된서리를 맞았다. 직장을 잃은 여자들이 나이트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어디 사시나요?” “부천요.” 남자의 아랫도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여기에 몇 번 와 보셨나요?” “친구 따라, 저기 저 친구, 전 오늘 처음 이예요.” 남자의 자아-지이는 이미 바짝 서 있었다. 그녀는 남자의 허리를 감았던 팔을 빼내어 그의 목에 걸었다. 남자는 오늘 잘하면 할 수 있을 거 같아, 하며 이미 마음은 모텔로 갔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은 보고 싶은 얼굴.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잎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당신을 그립니다. “우리 잠깐 쉬로 갈까요?” 그녀가 술에 취해 남자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자 남자가 속삭였다. “, 너무 힘들어요. 쉬고 싶어요.” “모텔에 데려다줄 테니 조금 쉬어요.” 남자는 그녀를 데리고 나이트를 빠져나와 인근의 모텔로 갔다. 모텔로 들어서자 남자는 그녀의 옷을 성급히 벗겼다. 남자는 서툴렀다. 남자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옷을 다 벗긴 남자는 허겁지겁 달려들어 젖무덤을 빨아들였다. 아야, 아파요. 이빨 자국 나겠어요. 남자는 오래 굶은 게 분명했다. 왜이래 늦는 거야. 오늘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가잖아. 그녀는 중얼거렸다. 남자는 여자의 사타구니에 오른손을 넣었다. 남자는 여자 몸 위에 엎드린 채로 자신의 옷을 힘겹게 벗었다. 황급히 터널 속으로 그것을 들이미는 순간이었다. 남자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남자는 지갑에서 현금 한 뭉치와 수표 여러 장을 꺼냈다. 아무것도 없다는 시늉으로 지갑을 탈탈 털어 보였다. 남자는 돈이 없는 지갑을 통째로 빼앗겼다. 남자의 겁먹은 행동, 순진한 모습이 더 큰 화를 불렀다. 모텔에 감금된 그날, 남자의 카드 세 개에서 이천만 원이 결제되었다.

그가 그녀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했다. 그는 부동산 거래에도 전문가를 능가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린벨트 해제 예정지의 도로변 땅 이천 평()이 매물로 나왔다. 그는 그녀에게 공동으로 투자하여 땅을 사자고 하였으나 그녀가 난색을 표명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그는 땅을 분할하여 천 평씩 사기로 했다. 그런데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암초가 걸렸다. 그린벨트의 땅은 법적으로 분할이 불가능했다. 여러 군데의 부동산 사무실과 건축사 사무실에 문의해도 분할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합법적으로 분할이 불가능하다는 땅을 합법적으로 분할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건평 구십 평을 건축할 수 있는 이축권을 이억 원에 샀다. 이축권으로 땅의 일부에 건물을 지었다. 건물을 포함한 땅, 천 평을 분할했다. 건물이 있으면 그린벨트의 땅도 분할이 가능했다. 그녀는 건물이 없는 땅, 천 평을 샀다. 그는 건물이 있는 자기 땅을 대지로 용도 변경시켰다. 건물이 없는 그녀의 땅은 용도변경이 불가능했다. 그녀의 땅은 그대로 전()이었다. 대지로 용도 변경된 그의 땅은 그녀의 땅보다 두 배는 비쌌다. 그녀는 그를 의심하여 공동명의로 땅을 사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없었다. 삼년 후, 그와 그녀가 산 땅은 그린벨트가 해제되었고 땅값은 세배 뛰었다. 그와 그녀는 땅을 팔았다. 다른 곳의 땅을 사기 위해서. 백만 원의 땅이 삼백만 원 되었다. 그녀는 그동안 모은 전 재산, 십억 원을 투자해, 삼년 만에 삼 십 억 원을 벌었다.

 

그녀는 그가 점차 좋아졌다. 많은 도움을 주고도 생색내지 않고, 손목 한 번 잡지 않는 그는 다른 남자들과는 완연히 달랐다. 그녀의 남자에 대한 편견이 적어도 그에 대해서만큼은 사라졌다. 그와 같은 사람이라면 사랑하고 싶었다. 이미 그는 그녀의 마음 안에 있었다. 그는 돈 아닌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면 엉뚱한 생각하지 마, 돈 버는 일에만 충실히 해, 다른 사람 믿지 말고, 나까지도 믿지 마, 당신을 사기칠거야, 무서운 세상이야, 하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가 무반응을 보일수록 그에 대한 사랑은 깊어갔다. 그는 그녀의 전부가 되어갔다. 아주 냉담한 그에게 그녀가 거칠게 대들었다. 딱 한번. 제가 그렇고 그런 여자라 당신 마음에 안 차는 거죠. 당신이 그렇게 잘났어요. 허공에 술병을 던지며 울부짖는 그녀에게, 마음 약해지려면 당장 떠나. , 더 이상 당신을 보호할 수 없어, 이제 당신, 떠날 때가 됐어. 그는 냉정히 돌아서며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만 숙였다. 황당해 하는 모습, 창백한 표정은 죄인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의 이런 모습을 일찍이 본적이 없었다. 그녀가 잃은 삼십 억 원보다 그가 더 소중했다. 그까짓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닌가요. 사람이 살고 봐야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시장이 바뀌면서 갑자기 도시계획이 바뀌었는데, 당신이라고 어찌할 수 있나요. 미안해하지 마시고 힘을 내세요. 내가 모은 돈, 삼 십억 원, 모두 당신이 모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원점으로 다신 온 건데 뭐, 어때요. 대신, 난 당신을 얻어서 좋아요, 내겐 당신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단 말예요. 건강 좀 챙기세요, 이러다 병나겠어요. 넓은 땅이라도 남아 있잖아요. 우리 거기에다 집하나 짓고 넓은 정원, 만들어요, 당신만 좋다면. 언젠가는 좋아질 날이 있겠지요. 야산이 배경되어 좋잖아요. 당신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네요. 눈물까지 흘리고. 지금 당신, 얼마나 귀여운지 아세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가 이렇게 속아 넘어가다니. 어떻게 번 돈인데.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뒤집어졌다. 시야가 노랗게 변해갔다. 시청에 확인한 결과 애초부터 그곳에 도시계획이 수립된 적은 없었다. 공무원은 그에게 주공아파트가 건립된다는 허위 정보를 흘렸다. 땅 주인은 공무원과 공모하여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의 전()과 야산 육천 평을 평당 이백만 원에 팔았다. 시가 평당 오십만 원의 땅을. 그녀는 다른 투자자 아홉 명을 더 유치했다. 공무원은 땅 주인으로부터 오억 원의 커미션을 받았다. 땅주인과 공무원은 스위스로 도망갔다. 그녀가 삼십 억, 다른 투자자 아홉 명이 각각 십억, 총 피해규모는 백 이십 억 원이었다. 피해자 명단에 그가 없어 이상했지만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할 사람이 따로 있지, 생각했다. 희대의 사기 사건은 중앙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땅 주인이 해외에서 살해되었고,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라는 기사와 함께. 그녀는 충격과 분노와 슬픔을 감추고 그를 집으로 초대해 위로했다. 며칠 밤잠을 설친 듯 수척해진 그를 깊이 잠들게 하기 위해 술에 수면제를 탔다.

 

그는 잠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곁에 누웠다. 그의 가슴위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작은 젖꼭지가 손가락 사이에 들어왔다. 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이 깊이 들었나, 생각했다.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의 사타구니 단추를 풀고 왼손을 스윽 집어넣었다. 더듬었다. 이상했다. 이렇게 작을 수가. 손을 빼고 일어나 앉았다. 그가 덮은 이불을 살짝 걷어냈다. 그의 허리띠를 풀었다. 허리띠에 가려져 있던 바지 앞 중앙 상단 단추를 풀었다. 사타구니 나머지 단추도 풀었다. 사타구니를 향해 목을 구부렸다. 바지 앞부분을 완전히 열었다. 순간 몸이 오싹했다. 너무 놀라, 한 걸음 뒤로 벌렁 넘어졌다. 두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그가 서서히 일어났다. 얼굴에는 야릇한 미소가 흘렀다. 그가 그녀 사타구니를 밟으며 성큼성큼 지나갔다. 문 닫는 소리에 그녀가 정신을 잃었었다는 희미한 기억만이 떠오를 뿐이다. 파안대소하는 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