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강화도 - 마니산 체험기

악나라 수호자 2023. 10. 31. 15:51

기가 가장 센 산이다. 남자는 다섯 다리로 걷고, 여자는 여섯 다리로 걸어라, 라는 등산객들의 코믹한 조언이 코믹이 아니라 애정 어린 경구로 들렸다. 마니산 정상에 올라갈 때까지 오른 손아귀에 꽉 잡았던 쇠 지팡이를 접어 배낭에 넣었다. 마니산의 주능선인 바위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마니산 정상에서 참성단을 따라 펼쳐져 있는 능선의 바위들은 마치 처녀가 알몸을 드러낸 듯 마니산의 내면을 소리 없이 외쳤다. 마니산을 더듬는 내 손바닥은 마니산의 정기에 감전되었다. 불규칙한 내 숨소리를 들은 듯 마니산의 숨결도 점차 가빠졌다. 안개구름이 헐레벌떡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누가 보면 어쩌려 그러냐고, 하면서 안개구름이 나와 마니산의 네 다리를 덮었다.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었다. 안개구름 속에서 마니산과의 정사가 끝나자 나는 원기를 회복했다.

원기가 회복되자 안개구름은 나를 태우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안개구름은 속삭였다. 섭섭해하지 말라고. 세상을 볼 수 없게 해서 미안하다고. 세상에 그런 법은 없다고. 어떻게 둘을 한꺼번에 가질 수 있냐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대신 하늘을 보라고. 안개구름, 그것은 바로 흰 옷 입은 가브리엘 천사가 나에게 보낸 당신의 전령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한 수호자였다. 순간만이라도 세상을 잊고서 그님을 온전히 생각하라고. 무의식적으로 기도 소리가 나오는 듯. 은총이 가득하신…

속설에 의하면 마니산과 태백산이 우리나라에서 기가 가장 센 산이라고 한다. 마니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곳이다. 태백산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와 신의 나라를 건설했으며 단군이 태어난 곳이다. 우리나라의 시조와 관련된 태백산과 마니산이 정기가 가장 세다는 속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마니산의 정식명칭은 마리산이라 한다. 마리산은 머리산이라고도 하는데 마리는 고어로 머리를 뜻한다. ‘머리는 사물 중 가장 으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니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전 민족, 전 국토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모든 피조물의 으뜸으로 치고 있다. 양쪽의 어원은 틀리지만 마리라는 어휘 관련, 어떤 상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니산의 정상은 한반도의 중앙이다. 마니산의 정상에서 한라산까지의 거리와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같다. 한라산과 백두산의 정중간이 마니산이다.

 

참성단은 마니산의 정상은 아니다. 마니산의 정상은 참성단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 원당 성당 양푼이 산악회가 참성단에서 하산했던 바위 능선 길에 보면 안내문과 함께 지적 관련 표지인 삼각점이 ‘+’로 바위에 표시되었었던 곳이 있다. 바로 마니산의 정상인 해발 469.4m인 곳이다. 참성단의 하부는 지름이 8.7m인 원형이고, 상부는 한 변이 6.8m인 네모의 정방형이다. 예로부터 원과 정방은 완전함의 상징이다. 이런 의미에서 참성단의 형태는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참성단에서 개천절 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전국체전 시 성화가 채화(태양열에 의해 불을 붙이는 것)된다.

우리 산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함허동천은 계곡의 이름이다. 함허는 조선전기 승려인 기화’(1376-1433)의 당호(堂號). 속세의 이름은 유수이. 기화는 여러 산을 편력하며 수행하였고 불교를 가르쳤으며 정수사를 중수(새로 고치거나 수리)했다. ‘함허동천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마니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함허동천 계곡의 너럭바위(넓고 평평한 바위)에는 스님이 직접 쓴 함허동천이란 네 글자가 있다. 함허동천 계곡에는 200m에 달하는 암반이 있다. 현재 등산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암반으로 가는 나무 계단을 공사 중에 있다.

마니산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는 언젠가 아니, 자주 마니산을 찾아 마니산의 정기를 받고 싶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신앙의 쇄신을 위해, 건강의 증진을 위해. 우리가 다녀온 코스가 제일 좋은 코스였다. 함허동천을 출발, 정수사를 경유,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정수사를 경우, 함허동천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으면 더 좋을 뻔했다. 물론 시간은 더 많이 걸렸을 것이다. 다음엔 혼자라도 이 코스를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