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먼나라 - 복지시설 원장님의 칠순 맞이 축시

악나라 수호자 2023. 10. 31. 16:19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같은 하늘 아래가 아닌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으면서도 같은 나라가 아닌

밤나무들이 옹골찬 밤을 잉태하고 개구리들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잠을 깨우는 깊은 산중,

논두렁길 따라 산길 넘어 통일 동산 돌아 자유로를 달리면

갈 수 있는 나라인데 갈 수 없는 머언 나라

 

머언 나라에서 여자가 돌아 왔다, 함께 살자고

두 다리를 가지고도 버티기 힘든 황량한 벌판에

상반신만 홀로 두고 떠나간 죄인을 용서하라고

밤잠 설치고 얼굴 붉히며 땀방울 맺힌 뽀송뽀송한 살결 어루만지고

거친 호흡 토해내며 한 몸 되어 만들어 낸 아이 데리고

머언 나라에서 여자가 돌아왔다, 함께 떠나자고

 

논두렁길 지나 산길 오르는 여자와 아이의 뒷모습 바라보며 난 울었네

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물줄기, 지나가던 찬바람이 닦아주며 말하네

이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머언 나라

야트막한 저 산만 넘으면 갈 수 있는 나라인데, 나라인데

뻐꾸기들의 철없는 속삭임, 문틈으로 들어와 적막을 깨는 밤

어둠 뚫고 터버억 터버억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들

빛나는 형체 드러내며 아우성이네

가지 마요 가지 마요

 

일곱 번 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 했나요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일곱 번을 자른 당신, 상반신만 남겨 놓고 어딜 갔나요

칼바람 부는 황량한 사막 지나 가시 돋은 푸른 벌판 거쳐

독기어린 혀 날름거리는 사람들 헤치고 날카로운 이빨 숨긴 짝퉁 십자가 피해

머언 나라 국경을 넘으면서 어쩔 수 없이 고백했네, 십자가 당신처럼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오늘, 아버지 손에 맡긴 일흔 삶은 노래하네

먼 나라에서 멀어진 나라에서 새롭게 탄생한 온전한 몸으로서

아가들아, 마중 나가자 논두렁길 따라 산등성이로

저기, 먼 나라 손님들 오신다, 아버지의 집으로

오늘도 내일도 등불 밝혀야지, 먼 나라 손님들 길목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