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이야기

천주교 신자의 이혼과 재혼

악나라 수호자 2023. 11. 1. 13:15

한국의 대표적 대중적 소설가 K는 오래전에 영세한 가톨릭 신자다. 자전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서 자신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밝히고 있다. 소설에서 18세의 여주인공 딸 위녕을 화자로 내세워 자신의 얘기를 풀어가고 있다. 소설에서 위녕의 엄마인 작가가 성당 미사에 가는 얘기가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소설 속의 내용으로 보아 믿음이 강했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믿음은 신기루 같은 것이다.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신앙 깊이의 널뛰기는 반복된다. 평생을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수도자들도 하루에도 수없이 믿음이 널뛰기를 하니까. K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 번째 이혼 후 너무 힘들어 18년 동안 거부했던 하느님께 처음으로 무릎 꿇고 한없이 울며 기도했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한없이 도도해 보이던 K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가톨릭에서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혼만 한 상태에서는 혼인 장애가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정상적인 신앙생활도 가능하다. 이혼만 한 상태에서는 교회로부터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는다. 이혼하고 재혼을 하면 비로소 혼인 장애가 되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교회 재판을 통해 이혼이 정당화되지 않는 한, 재혼한 사람은 교회의 정상적인 종교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종교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교회법적, 제도적 의미를 말한다. 천주교 신자는 결혼하면 호적등본, 주민등록 등본 등을 사무실에 제출하여 교회 입적절차를 하는데, 법적으로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을 교회가 받아 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천주교 신자로서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은 제도권 내의 종교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은 어떻게 될까. 재혼한 사람이 성당에 나와 전례에 참여하고 기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다. 다만 영성체는 할 수 없다. 천주교 전례의 핵심은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인데, 영성체 없는 신앙생활은 비정상적이다. 단체 활동도 불가능하다.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이 자기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다른 성당에 가서 전례 행위에 참여하고 영성체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설정 문제이고 양심의 문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본질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을 찾는다. 살인과 재혼 중 어느 것이 더한 죄라고 생각하는가. 살인한 자도 용서하는 것이 교회 정신이다. 살인자도 하느님을 찾고 싶어 하고, 재혼한 사람도 하느님을 찾고 싶어 한다. 그들의 하느님 찾고 싶은 마음을 사람들이 막을 수 없다. 살인한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을까. 살인한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을까. 재혼한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을까. 재혼한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을까. 영영 그들에겐 지옥만이 기다리고 있을까.

 

세 번을 이혼하고 재혼한 소설가 K는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을까. K에게 지옥만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혼했으나 재혼하지 않고 있는 사람, 이혼하지 않았으나 다른 죄는 다 짓고 사는 사람, 그들의 구원은 어떻게 될까. K는 아버지가 다른 삼남매를 잘 키웠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K에게 어떤 판단을 내리실까. 가톨릭의 제도적 입장에서 이혼하고 재혼한 죄인 K를 구원할 힘이 전능하신 하느님에겐 없는가. 그렇다면 잠자고 일어나 생활의 전선에서 죄 속에서 살아가는 나, 우리의 구원은 어떻게 될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내가 아는 어떤 신부님은 가정 폭력이 심한 남편과 아내의 이혼을 앞장서서 권했었다. 소설가 K는 어떤 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여인이다. 지금은 이혼이 이슈가 아니다. 이혼도 사회생활의 한 단면일 뿐이다. 지금 이슈는 나, 나는 잘살고 있는가, 이다. 지금 K 소설가는 가톨릭 신문에 칼럼 연재도 하고 있어서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가는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 보시기 참 좋은 모습이다.

 

인간은 죽지 않고서는 죄를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