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이야기

나는 어떻게 천주교 신자가 되었을까?

악나라 수호자 2023. 11. 14. 17:25

천주교 신자가 된 것도 운명일까? 살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인생이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이화여대에서 약학을 전공한 후 약국을 운영한 친구 누나의 끊임없는 개신교로의 입교 권유를 받았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교회를 나가는 일은 없다.’ 이것이 내 철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시골 동네는 대부분이 불교와 유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당시 시골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몇몇 있었는데, 그들을 대상으로 ‘예수쟁이’로 수군덕거리기는 문화였다. 기독교 신자들은 거의 기피 인물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교회를 나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학교 4년 동안은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교회를 나오면 자기 딸을 준다면서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결사 항전의 자세였다. 그런 내가 성당을 나가게 된 것은, 친구 동생과의 혼담이 오가면서부터다. 내가 사랑했다기보다 중학교 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던 친구라서 그 집과는 가족처럼 지냈었다. 결혼적령기가 다가오자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고, 친구 동생이 떠올랐다. 나는 국내 가장 큰 대기업 생활을 하고 있었고, 친구 동생은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아직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아니었지만, 나의 결혼 프러포즈를 받고 친구 동생은 상당히 당황했었다. 친구 가족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다면 친구 여동생은 결혼적령기도 아니었고, 사귀는 남자도 있던 터라 상당히 심란했던 거 같았다. 그렇다고 나의 결혼 프러포즈를 거절하기도 아쉬웠던 상황이었다.

 

결국,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했던 친구 동생은 가족과 나의 설득으로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 동생을 위해 무엇을 해 줄까, 고민하다 3대 대대로 천주교 신자였던 그 가족들과 친구 여동생의 바람을 들어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러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유로 몇 번의 엇박자가 있었고, 인내심 부족하고 결혼을 앞둔 여자의 미세한 흔들림을 참아주지 못하면서 우리의 결혼은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결혼하지 못한 친구 동생이 다행스러웠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자평하면 나는 훌륭한 남편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결혼해서 고생했을 친구 동생을 생각하면, 결혼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나와의 결혼 파경으로 친구 동생은 자살을 기도했고, 친구 누나는 나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에 대한 오해도 풀렸다. 그 후 나는 친구 동생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고, 친구 동생 남편도 만났으며, 친구와의 관계는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종교에 대한 나의 왜곡과 거부는 친구 여동생으로 인해 완벽하게 변했다. 하느님은 이렇게 내 인생에 개입했다. 천주교 입교로 인해 내 인생은 완벽하게 변곡점을 맞게 된다. 가난한 농촌에서 대학의 입학과 졸업, 대기업 입사와 성공에 대한 꿈을 실현하던 중 천주교 입교는 나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돌려놓았고, 생활의 중심을 천주교로 완벽하게 돌려놓았다. 천주교 입교 이후, 많아지는 종교 생활과 폭넓은 활동 반경으로 생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거두절미하고, 사회적 성공을 바랐던 시골 어른들과 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친 나는 고향을 즐겨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고향 친구들과 멀어지고 성당 교우들과 더 가까워지는 생활 환경으로 변해 있다.

 

그렇게 나는 완전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나를 인도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하느님의 인도와 내 선택의 결단에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생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와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늘을 맞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보람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높은 자존감을 느낀다. 지금 나는 이혼했고, 나를 멀리하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지만, 그것이 종교 생활의 종합적 여파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54평 아파트에서 홀로 살면서 누구보다 행복한 취미 생활과 건강한 생활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김연아와 유재석과 박진영과 손홍민과도 바꾸기 싫은 내 삶에 대단히 만족한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더 욕심내지 않는다. 욕심이 과하면 자만해지고 교만해지니까. 신이 질투하니까. 다른 누구보다 절대자 신의 질투는 받고 싶지 않다.

모두가 다 변했다. 부모도, 아내도, 자식도 다 변했다. 변하지 않는 사람 단 한 분은 하느님, 예수님 뿐이었다. 하느님, 예수님만이 변하지 않고 내 곁에서 나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