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여자들

마크롱 대통령과 나의 여자들 ( 5 ) - 머리카락과 피 한 방울을 남긴 S대 여자

악나라 수호자 2023. 12. 18. 01:52

, 이런 사랑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이런 사랑은 없었던 거 같다. 헤어질 당시에는 죽는 줄 알았다. 살아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약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니, 여자를 잊고 다른 사랑을 만나고 있었다. 여자와 헤어진 후 다른 여자를 못 만났었다. 당시 내가 만들어 낸 명문장이 있다. 헤어질 자신이 없어서 사랑하지 않는다. 그 이후 실제로 나는 오랫동안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헤어질 자신이 없어서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나의 대학 생활 마지막 여자였다. 길을 가다가 팔짱을 끼고 걷는 남녀를 보면 애가 탔다. 헤어짐의 아픔을 어찌 감당하려고 저럴까, 겁부터 났다. 여자는 헤어지면서 자신의 머리카락과 피 한 방울을 내게 주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뜻이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여자의 심리를 모르겠다. 여자는 평생 나를 못 잊을 거 같다며 머리카락과 피 한 방울을 내게 주었다. 여자의 행동은 섬뜩함을 주었지만, 나에 대한 강한 사랑의 증표였다. 헤어진 후, 나는 밤마다 여자의 집 앞에 가서 여자의 방 창문을 바라보면서 울었다. 밤늦도록 여자의 집 앞을 서성이다가 하숙집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어떤 때는 기다리다가 여자가 집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고 헐레벌떡 숨었다가 다시 여자의 방문을 바라보며 울었다.

 

사랑하니까,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그때 알았다. 사랑하니까, 여자를 바로 앞에서 보고도 아는 척을 하지 못하고 피했다. 헤어질 때 여자는 내게 머리카락과 피 한 방울을 선물했고, 나는 여자에게 100쪽 분량의 편지를 써서 주었다. 그 편지를 복사해 놓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많은 분량의 편지를 썼을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만큼 절절한 편지였을 것이다. 내 생애 그렇게 많은 분량의 편지를 써 본 기억이 없다. 저절로 글이 나왔던 거 같다. 소설가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는 걸 들으면, 어떤 힘에 이끌려 사흘 밤낮으로 글을 쓸 때가 있단다. 이후에 퇴고를 거쳐서 소설가들의 최종 원고가 나오겠지만, 그렇게 홀린 듯 글을 쓴 게 내게는 처음이었다. 나는 손 글씨 100쪽 분량의 편지를 여자에게 주었다. 여자가 그 글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다.

 

헤어질 때 내가 여자를 만난 곳은 전철역 앞 촛불 다방이었다. 여자는 엄마를 대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촛불 다방을 자주 이용했다. 여자는 나를 만날 때마다 늦게 집에 들어갔다. 여자는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여자가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것은 정숙하지 못한 행실이었다. 여자의 집은 보수적 집안이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철저히 점검받았다. 여자는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늦어지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불안은 때로는 내 생각 범위를 넘어섰다. 이따금 의심이 들었다. 수양딸은 아닌지, 하고. 여자는 엄마의 존재감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자는 대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어리게 보였다. 내가 여자와 여관에 들어갔을 때 여관 주인이 내게 말했다. 경찰이 올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얼른 끝내고 나오라고. 여관 주인은 내가 나이 어린 여자와 매춘하거나 불법적으로 만나고 있는 줄 오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복학생이었고, 여자는 갓 1학년이었으니까, 나이 차가 있어 보였을 것이다. 내가 여자와 첫 키스를 했을 때 여자는 매우 떨었다. 무슨 잘못된 행동을 한 것처럼 떨었다. 죄의식을 가졌다. 하늘의 벌을 받는 것처럼 오해했다. 혼전 순결이 매우 강조되던 시기여서 그랬을 것이다. 나와 여자가 여관에서 엉켜 뒹굴 때 여자는 겁을 먹었었다. 저기 창밖 환한 빛이 겁난다며 창문 커튼을 닫아 달라고 요청했다. 겁 많던 여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졌다. 여자는 자기 젖꼭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어머 큰일 났어요, 엄마 젖꼭지처럼 까맣잖아요, 하고 장난을 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이상스레 여자의 젖꼭지를 좋아해서 자주 빨았다. 하숙집에서 여자의 젖꼭지를 빨다가 쪽, 소리가 나는 바람에 누군가 밖에서 들었을까 봐 잦은 걱정을 했다.

 

우리는 강의실에서도 정사를 나누었다. 여자의 입술은 두꺼웠다. 빨갛던 여자의 입술은 나를 만나면서 검붉게 변해갔다. 여자는 입술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다. , 어떡해. 내 입술이 엄마처럼 변해가네. 여자는 걱정하면서도 나를 받아들였다. 여자는 바지를 주로 입었는데, 나는 여자의 지퍼를 열고 그곳을 자주 만져 주었다. 여자는 그곳 만져 주기를 좋아했다. 강의실에서의 정사는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여자의 그곳을 깊숙이 만져 주는 것으로 여자를 달랬다. 내가 그곳을 만져 주고 여자의 혀를 농도 깊게 애무해 주면 여자는 약간의 신음을 내며 내게 밀착해 왔다. 내가 으스러지게 여자를 안으면 여자는 숨이 멎는 듯 으윽, 하고 소리를 내면서도 그것을 즐겼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하숙집에서, 강의실에서, 다방에서, 여관에서, 캠퍼스 숲속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했다.

 

영화관에서 여자는 무릎 위에 놓았던 가방이나 책을 자신의 허벅지 옆이나 영화관 바닥으로 옮겨 놓는다. 무릎 위에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것을 아는 여자다. 나는 여자의 그런 행동을 만져 달라는 여자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여자의 앞 지퍼를 열고 여자의 그곳을 만진다. 여자의 몸은 순간 움찔한다. , 하고 신음을 낸다. 여자의 그곳은 이미 흥건히 젖어 있다. 여자는 내 그곳으로 자신의 손을 가져온다. 여자가 내 그곳을 열기를 머뭇거린다. 나는 지퍼를 열고 여자의 손을 내 그곳으로 가져간다. 내 것도 이미 서 있다. 여자는 내 그곳을 꼭, 감싸 쥐고 힘을 주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옆으로, 뒤로 사람이 있는지 일별한 여자는 내 그곳으로 자기 입을 가져온다. 때론 여자의 쪽, 소리 나게 빠는 소리 때문에 앞 사람이 놀라서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우리는 보던 영화를 그만두고 영화관을 빠져나와 여관으로 직행한다. 여자의 젖꼭지와 입술과 그곳은 스무 살의 나이에 성인의 것으로 변해갔다.

 

나는 영어 회화 학원에서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키는 작았으나 목소리가 좋았다. 당시에는 웅변대회가 유행이었는데 여자는 고교 시절 웅변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했을 정도로 목소리와 발표력이 좋았다. 유명 여자대학을 다녔고, 사교성이 있어서 학원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우리는 1시간 내내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가 있었다. 사교성이 있었던 여자는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지적인 여자가 다가오는데 싫어할 남자는 없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여자와 나는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차를 마셨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서로 마주 앉았던 나는 여자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도 나를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여자의 어깨 위에 내 오른손을 얹었고 여자를 내게 가까이 끌었다. 여자는 싫지 않은 듯 내게 기대어 왔다. 나는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자의 왼쪽 볼을 내 오른쪽 볼로 가까이 밀착시켰다. 여자의 떨림이 전해졌다. 나는 여자의 볼을 내게로 돌렸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여자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여자의 두껍고 빨간 입술은 달콤했다. 여자는 입술이 약간 열리다가 닫혔다. 내 입술이 여자의 목으로 내려갔다. 여자의 숨이 가빴다. 여자의 뜨거운 체취가 느껴졌다. 여자의 가벼운 신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여자가 갑자기 일어나며 말했다. 이러면 안 돼요. 엄마한테 혼나요. 우리는 커피숍을 나와 말없이 걸었다. 그것이 나와 여자의 첫 키스였다.

 

여자의 엄마가 촛불 다방에서 나를 보자고 하길래, 책임지라는 말을 하려는 것으로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여자의 집안은 권력자로 추정되었다. 여자는 엄마를 만나기 전에 내게 신신당부했다. 엄마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엄마의 말을 거스르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계속해서 늦게 집어 들어오는 딸을 수상히 여긴 엄마가 사람을 시켜 미행했다. 엄마는 나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다. 내게 점잖은 여인의 풍모로 충고했다. 나는 농군의 아들에게 내 딸을 줄 수 없네. 내 딸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로 하게나. 자네가 내 딸을 사랑한다면 여기서 그만 끝내게. 인연이 닿는다면 저세상에서 만나게 될 걸세. 여자는 엄마의 말만 듣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여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울고만 있었다. 심한 자괴감이 들었고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지만, 여자의 사전 당부가 있었던 터라, 여자 엄마의 말에 일절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여자 엄마에게서 어떤 위압감이 전해져 온 것도 이유였다. 우리 딸은 이미 갈 길이 정해져 있어, 하는 여자 엄마의 단호함에 뭔가 모를 두려움이 전해왔다. 내 딸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여기서 제발 멈추어 주게. 이게 자네와 내 딸을 위해 올바른 선택이야. 내 딸과 자네의 관계 진전을 알고 있어. 자네가 알아야 하지만 모르는 일도 있고.

 

나는 여자와 헤어지면서 저항할 수 없는 여자 엄마의 위엄과 그 위엄이 전해 주는 간절한 몇 마디가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위압적인 무게감의 여자 엄마에게서 나온 제발, 이라는 간절함의 단어, 자네가 알아야 하지만, 모르는 일이 있다, 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여자 엄마의 말에서 약간의 저항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여자 엄마의 위엄도 있었지만, 여자 엄마의 진정성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더는 만나면 안 될 거 같은, 더 만난다면 여자에게 뭔 일이 생길 거만 같은 불안감이 밀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가 잘 되었기를 바랐다. 언젠가 여자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여자의 얼굴 형태는 그대로 있었고, 젊었을 때 그 모습과는 많이 변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고, 사회적으로 웬만큼 안정되어 있어 보였다. 박사 학위를 받았고, 나름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참,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가왔다. 우연이라도 만난다면 따뜻한 밥 한 끼 사 주고 싶었다. 여자는 아주 유명한 인사는 아니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검색이 가능할 정도로 인지도가 있었다. 여자가 건강한 삶을 이어 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나 같은 사람과 끝까지 엮이지 않았기를 정말 잘했다.

 

나의 수많은 여자 중에서 단 한 사람의 여자를 꼽으라면 이 여자를 꼽는다. 다시 돌아가 한 여자만을 사귀어야 한다면 이 여자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했고, 나를 가장 사랑했던 여자였으니까. 여자가 좋아했던 노래는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그런 관계로 나의 애창곡도 참새와 허수아비가 되었다. 술 취한 날, 노래방엘 가면 참새와 허수아비를 꼭, 불렀다. 보내야만 해야 할 슬픈 나의 운명, 훠이 훠이 가거라 산 넘어 멀리멀리, 보내는 나의 심정 내 님은 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