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나의 연애 세포가 죽은 이유

악나라 수호자 2023. 12. 6. 13:19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금사빠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쁜 여자는 무조건 좋다. 그렇게 여자를 좋아했던 내가 여자를 멀리하게 된 이유, 이쁜 여자를 보고도 연애 감정이 생기지 않은 이유, 아니면 의도적으로 여자를 경계하는 이유가 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자의 무서운 내면, 여자의 본성을 정면에서 대면하고는 나의 자아에서 여자는 경계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나는 막연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첫째, 어머니 탓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약간의 유산을 남겼다. 많지도 않은 유산이다. 10억대. 나는 어머니와는 멀리 떨어져 살았고, 혼자 살아갈 어머니를 생각해서 아버지의 유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동생이 모시고 살았던 이유도 있었기에 집안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경제적 관념이 별로 없다. 지금도 가난하지만, 목숨 걸고 돈 모으는 삶은 질색이다. 노력은 하지만 목숨을 걸지 않는다. 크게 노력하지는 않는다. 돈이 모든 것이라는 사고는 죽어도 싫다. 그렇기에 가족들이 고생했다. 돈이 필요했다. 6개월이면 충당되는 액수다. 어머니에게 많지도 않은 5백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빌려주지 않았다. 돌려받지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원했는데도 빌려주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XX 같은 험한 말을 했다. 화가 치밀어서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다. 시간이 지나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려고 전화했다. 어머니는 내 전화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라고 응대했다. 그게 나와 어머니의 마지막 통화였다. 한 참이 지난 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지웠다. 여러 차례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반복해서 전화가 오길래 스팸으로 돌렸다. 어머니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전화한 흔적을 발견했다. 다른 가족 전화를 이용해 전화했지만, 전화 받기를 거부했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어머니가 아닌 여자의 무서운 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아들 하나쯤은 버릴 수 있는 게 여자다. 어머니는 동생과 살기 때문에 동생의 주문대로 살고 있었다. 동생의 주문을 거절할 수 없었다. 형과 동생의 숙명적 라이벌 관계는 문학 작품에서도 자주 나온다. 어머니는 살기 위해 동생을 택했다. 그렇게 살면 될 것이다. 그런 선택을 했으면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될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실 나이쯤 되었고, 요양원에 계실지 모르지만, 어머니로 추정되는 모든 전화에 스팸을 걸어 놓았다. 어떤 때는 찾아뵙고 싶기도 하지만, 용서가 안 된다. 가족들에게 내게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해 놓았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어머니가 내게서 험한 말을 듣고 그것을 가족들에게 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머니를 다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서 들은 험한 말을 동생에게 전했고, 동생도 내게 험한 말을 했다. 나는 동생을 죽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게 나와 어머니가 만나지 못하는 이유다. 내가 사과의 마음으로, 인간적인 연민과 양심으로 어머니를 찾으려 몇 번을 생각했지만, 가족들이 내게 품었을 불효를 생각해서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머니란 여자를 신뢰할 수 없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경계해야 할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둘째 딸 때문이다. 내가 가장 애지중지 키웠던 딸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내가 딸 아이에게 폭언이나 매질을 한 게 다섯 번 이하일 것이다.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딸에게 꼬박 용돈을 주었다. 함께 시장을 다니고, 딸 아이를 태우려고 대학교를 드나들었다.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내와 딸 아이의 문자 교신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엄마, 아빠와 이혼해. 아빠가 자꾸 화를 내고 때려. 아내가 대답했다. 아빠 없으면 우린 생활이 어려워. 네 용돈은 누가 주니? 학비는 어떡하고. 그래도 싫어, 그까짓 학비, 용돈, 없어도 돼. 내가 알바 하면 되고, 학자금 대출받으면 돼. 우리 생활은 어떻게 하고, 아내가 대답했다. 엄마가 벌면 되잖아. 나의 충격과 섭섭함은 대단했다. 친했다고 생각했던 딸 아이의 속내가 이거라니! 조금의 섭섭함도 참지 못하는 대학생 딸 아이의 속내에 이게 내 딸이구나. 이게 딸과 멀어진 계기였다.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가 이유를 알 수 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듯이, 그렇게 섭섭했던 딸인데도 보고 싶을 때가 많다. 내리사랑이란 옛말이 다 맞는 얘기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자꾸 말 걸고 싶지만, 젊은 사람들은 튕긴다. 부모는 아이들과 대화하고 싶지만,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자기들의 세계가 형성되어 부모로부터 멀어져 간다. 구세대는 신세대에 가까이 가고 싶고, 신세대는 구세대로부터 멀어져 가려는 문학 작품들이 많다. 그러려니 해야지 어떻게 하겠나. 이게 순리다. 순리를 거역하려 할 때 점점 왜소해진다.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이용당하고, 나이든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이용당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피해가 막심하다.

 

셋째 나를 홀린 팜므파탈의 중년 아나운서가 있었다. 친하게 지냈다.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허물없이 지냈고 가벼운 키스는 있었다. 여자가 냉정하고 사려가 있었기에 깊은 관계 진전은 힘들었다. 여자가 철저히 방어막을 치면 남자가 들어가기 힘들다. 남자의 바람은 타고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가 있기도 하지만, 남자가 문지방을 나가면 내 남자가 아니다, 하라는 옛 여인들의 지혜(?)는 새겨둘 필요가 있다. 이걸 용서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이혼할 생각으로 결혼 생활을 해야 한다. 나와 여자의 관계는 여자 아들에게 발각되면서 끝났다. 여자 아들에게 발각되었을 때, 여자는 매몰차게 나를 모르는 척했다. , 대단했다. 여자가 이런 거구나, 했다. 모르는 척, 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히 여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내게 있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을 맞닥트리니 여자의 냉정함에 찬물을 확,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이런 것의 경험으로 내 연애 세포는 죽어가고 있었다.

 

넷째 결정적으로 연애 세포가 죽은 것은 내 생활 방식 때문이다. 나는 나이가 들고 육체가 늙어가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너무 서글프다. 1년이라도 젊게 살고 싶고,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춤을 춘다. 나이든 사람들이 추는 춤은 싫다. 스포츠 댄스나 소위 아줌마 춤선을 가지고 있는 줌바 나 에어로빅은 싫어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모든 춤은 다 건강에 좋다. 케이팝 노래만 좋은 게 아니고 트로트도 좋은 노래다. 모든 노래가 다 정신 건강에 좋다. 다만 사람마다 기호가 다를 뿐이다. 나는 나의 기호에 따라 젊은 사람 층에서 접근하는 춤을 좋아한다. 전문가는 절대 아니고 취미로 방송 댄스, 재즈댄스, 발레, 현대 무용 등을 하니까, 주로 접하는 사람이 여성이다. 여성들 무리 중에 유일한 남자다. 전문가나 전공자 중에는 남자들이 많은 편인데, 유독 취미 클래스에서는 남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자를 좋아했던 나지만, 여자보다는 내 취미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여자를 멀리한다. 내 춤추는 취미에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이쁜 여자라도 거부하는 게 나의 신조다. 여자들 숲에서 춤을 추고, 이것을 극도로 의식하고, 극도로 경계를 하다 보니까, 아예 여자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버린 것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지금은 김태희보다 10배 이쁜 여자가 나타난다 해도 내 춤추는 취미에 방해가 된다면 나는 그 여자를 거절할 것이다. 이러니 연애 세포가 죽지 않을 수 없다. 술도 먹어 본 사람이 먹고, 마약도 해 본 사람이 하듯이 연애도 해 본 사람이 한다. 내가 이렇게 여자를 거부하는데 연애 세포가 살아날 리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