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이야기

이선균 배우의 죽음이 안타깝네요! - 천주교의 마녀사냥 ?

악나라 수호자 2023. 12. 28. 12:22

이선균 배우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유명인의 죽음을 볼 때마다 답답함을 금할 길 없다. 이제 살만한데,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연예인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그 충격이 심하다. 경찰 조사를 받아 본 적도 없고, 유명해 본 적도 없고, 매스컴을 타 본 적이 없는 내가 보았을 때는 정신력이 왜 그렇게 약할까,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악풀? 떠들어라, 나는 간다, 하면 될 것이고, 경찰 조사? 있는 대로 말하면 되지 않을까? 감방? 가지 뭐, 하면 되지 않을까. 쉽게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내 경험을 얘기하겠다. 천주교? 마녀 사냥은 중세기 때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가톨릭의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천주교에서 신부님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파벌 싸움은 무시무시하다. 천주교의 무시무시한 파벌 싸움의 중간에는 대개 신부님이 그 중심에 있다. 신자들끼리는 싸운다 해도 크게 번지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싸우다, 끝난다. 그런데 거기에 신부님이 개입되면 걷잡을 수 없다.

 

천주교 신자들의 신부님에 대한 맹종이 그 폐단이다. 어떻게 감히 신부님에게? 로 시작하는 교우들의 마녀사냥은 엄청나다. 이것이 천주교를 잡아먹는 폐단의 하나다. 나의 경우, 간략히만 얘기하겠다. 사람들이 싸우는 중요한 이유는 가치 판단의 차이에서 온다.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느님을 믿지만, 종교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순간이 많이 있다. 그럴 때 의견 차이는 차이를 넘어서 싸움과 반목으로 이어진다.

 

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성전 건축 문제로 교우들 사이에서 엄청난 싸움이 있었다. 신부님을 비난하는 유인물이 수천 장이 뿌려졌고, 이 유인물 배포의 주범(?)을 잡겠다고 교우들은 불침번을 서는 희대의 코믹한 사건이 벌어졌다. 쉽게 얘기해서 신부님의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과 찬성하는 사람이 갈린 것이다. 신부님의 정책을 찬성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거기에 반대하는 일부 신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 하면 적군이요, , 하면 우군인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되고 이렇게 큰 싸움을 처음 목격했다. 나는 의견 결정 과정에서 비켜서 있었지만, 그 내용의 옳고 다름을 떠나서 신자들의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신부님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교우들의 싸움을 말린다고 해서, 신부님에게 신부님이 앞장서서 교우들의 싸움을 말려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해서, 신부님이 나를 교우들에게 좋지 않은 소문을 냈다. 당시 나는 약간의 영향력이 있는 신자의 위치에 있었고, 신부님도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터였다. 신부님들은 존경받는 신자, 영향력이 있는 신자를 부담스러워하는 유치한 일반적인 경향이 있다. 명석하고 유능한 신자가 많아야 교회에 유익함에도 신부님들은 그런 신자들이 신부님들의 권위에 도전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그런 신자들을 경계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가톨릭 내에 있다. 이런 신부님들의 자세가 가톨릭의 발전을 가로막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신부님은 분노에 차서 그 경건한 미사 강론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걸고 성전 분란의 중심에 서 있는 신자들의 신자 생활을 막겠다고 엉뚱한 강론을 했다. 사형수도 용서하는 곳이 예수님과 교회의 정신인데, 자신의 사목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사제직을 걸고 그들의 신자 생활을 막겠다는 신부님의 강론이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게 들렸다. 당시 나는 싸움을 말렸다는 이유로 신부님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몰려 완전한 왕따가 되었다. 내 곁에 교우들이 오질 않았다. 내가 마치 전염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나를 대했다. 나에게 말을 걸면 혹시 적군으로 몰릴까 봐, 아예 나를 멀리했다.

 

나의 공정함과 논리적인 말과 올곧은 자세를 알기에 내게는 한마디 못하면서 뒤에서는 완전히 수군덕거리고 내가 성당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교우들이 대다수였다. 당시 나의 곁에는 나를 이해하고 함께 해주는 친구 몇 사람만이 있었다. 그들이라도 있었기에 내가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내 양심에 꺼릴 게 전혀 없었고, 하느님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었기에 나는 교우들의 왕따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임기가 차서 그 신부님은 떠나고 나는 전국 가톨릭 신자들이 보는 가톨릭 게시판에 그 신부님의 부당한 사목에 대해 일갈했다. 그 게시의 글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교우들의 응원이 있었다. 그 글을 읽은 신부님은 사제의 옷을 벗고 싶을 정도로 우울증이 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글을 삭제해 달라는 내가 존경하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그 글을 삭제했다. 나는 지금도 그 성당에서 신자들과 화합하며 잘 지내고 있다. 이런 곳이 성당이다.

 

신자들의 싸움에는 항상 신부님이 그 중심에 있다. 신부님이 중심을 잡으면 싸움이 수그러들거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신부님이 편승하면 그 싸움은 마녀사냥으로 번진다. 마녀사냥은 중세기에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어느 가톨릭교회의 구석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곳이 가톨릭교회다. 간디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예수는 사랑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싫다고.

 

그래도 나는 천주교에 나간다. 사람을 보고 천주교에 다니면 실패한다. 나는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한다. 내가 성당에 다니지 않으면 내가 결정적으로 의지할 곳은 없다. 가족도,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결정적인 의지처가 아니었다. 그동안 경험상 천주교의 단점이 무한히 많지만, 그래도 나는 천주교에서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