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자서전

자작시 모음 - 밤, 태극전사가 두려워지는 외 다수

악나라 수호자 2023. 10. 30. 12:07

 

그렁그렁한 눈 이슬

흘리지도 못하고

머금다

누가 볼까봐

 

말없는 눈

수천마디 말하며

다가온다

심장 속으로

 

온 몸에 달라붙은

파리 떼

단물을 빤다

새끼들처럼

 

거품을 토해내며

땡볕에 밭 가느라

파김치 되어도

혼자 맞는 밤

 

운명 같은

팔자소관

음매 음매

하늘을 울린다

 

, 어버이 마음이다

 

 

할미꽃

 

내 몸은 구멍 뚫린 에어탑

몽롱한 현기증 반딧불 되어 나른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밤안개

발목을 묶는다

 

너와 나의 충돌소리

자갈 빠개어지는 소리

불쑥 튀어 오른 돌출물에

내 몸 늪지대에 엎어진다

 

광야에 홀로 핀 할미꽃 찬 이슬 머금고

그 이름을 불러보지만 너만의 세계 따로

어릴 적 내 모습 그려 보는데 내 모습 너에게 박혀

내 모습 다시 꾸려 보지만 이미 그 씨앗 돋아 버려

 

달나라에 가서 별을 따오라니

내 마음, 숯덩이 되어 말을 한다

철길처럼 마주 걷고 있는 너와 나

따로 보이나 저 멀리는 하나

 

너는 너, 나는 나 슬픈 일

형형색색 꽃밭 일구는 그님 뜻

동서남북 없는 세상에

나침판이 생겼다

 

 

........... !

 

검둥이 한 마리

죽은 고양이 입에 물고

바쁜 걸음 옮긴다

함께 놀던 친구일까

 

바닷물이 삼키다 남은 백사장엔

죽은 고양이를 애무하며

뱅글뱅글 돌고 도는 검둥이

모래 무덤을 만든다

주둥이로

 

인간들이 하는 것처럼

동그란 봉우리를

고양이의 모래무덤

어디서 배웠을까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고

야릇한 울음소리

마지막 체취를

작별인사를

 

어디론가 떠나간다, 촘촘히

뒷모습 눈에 밟힌다

신기한 듯 고양이 무덤을

보고 또 보고

무슨 사이일까

 

............ !

 

 

 

아버지 !

아버지 !

아버지 !

 

집에 불이 났어요

빨리 와 보세요

 

덜커덩

문 닫는 소리

 

툭 스위치 켜지는 소리

 

-

기계 돌아가는 소리

 

통곡한다

땅이 꺼진다

세상이 멎는다

하늘이 무너진다

 

귀가 멀어 진다

눈이 멀어 진다

 

 

 

아지랑이 되어

내 앞에 아른거린다

영원한 동반자로서

 

박쥐 되어 찾아와 엉겨 붙는다

빛에 놀라 도망간 그 자리

불타버린 잔해 모습

가고 싶지 않은

선 너머

돌아가라 !

네 굴속으로

 

선 위를 걷고 싶다

선 넘기 1Cm

선 위를

, 나를 데려가 다오 !

아지랑이 고향으로

 

 

소주병

 

첩첩 산중 조부 묘엔

아버지 다녀간 자리

조부께 한잔 술을

올리신 아버지 발자국

 

홀로 낫질을 하며

조부 묘를 지키신 아버지

낙엽 속을 비집고 나와

부른다

빈 소주병되어

 

언제 오느냐고

세태를 한탄하며

부르는 음성

산속 울린다

 

기다림에 지쳐 눈을 감은 아버지

조부님과 한잔 술을 나누며

내 뿜는 한숨소리

뒤늦게 유언을 한다

조부님 묘소 돌보라고

 

 

아버지

 

한 쪽 날개에 6. 25의 탄흔

영글다 만 새끼의 사랑 노래로 교통사고,

한 쪽 옆구리의 후유증에 숨이 가쁘다

 

넓디넓은 들판과 산간 땅

지하 갱 속의 탄가루

중동 사막의 모래바람

 

다른 새끼 제쳐두고

오로지 한 새끼를 위하여

당신의 온 몸 부서졌지만

 

한번의 섭섭함에 발길을 끊고

오지 않는 새끼를 목 놓아 기다리다

기다림에 지쳐 눈을 감았다니

마지막까지 나를 찾았다니

 

한이 서린다

가슴 아려 온다

멈추지 않는 눈물

당신에 대한 그리움 되어

계룡산 골짜기를 흐른다

 

 

갈림길

 

올라갈까

내려갈까

산 중턱에서

망설인다

 

내려오라 속삭이는

올라오라 호소하는

두 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마음은 올라가는 데

어느새

내려가고 있는 발길

누가 이끄나

 

음지 골짝에서 목 놓다

골짝 흐르는 눈물

바다로 간다

해돋이 맞으러

 

마음 따라 올라가는 발길

협곡 물살 거스르는 발길

태양이 반긴다

월계관으로

 

갈림길에서

누가 이끄나

 

 

불나비 떼

 

칠흑 같이 어두운 산중 속으로

떼 지은 차량 행렬

마음이 바쁘다

은밀한 문 속으로

숨죽이며 달린다

 

이 세상 속 저 세상

첩첩산중 야릇한 불야성

새 옷 새 빛 갈아입은 어두움

불나비 떼 반긴다

백주 같은 어두움엔

불꽃들이 만발하다

 

처절한 웃음소리 현란한 비늘

불나비 떼에 엉겨 붙는

만개한 불꽃들

차량 행렬 이글이글 집어 삼킨다

굴속, 자기 고향으로 들어간

차량 행렬, 엔진 소리 요란하다

 

잉태의 굴 폐허되어

불나비 떼 춤춘다

불꽃들의 향연

재가 된 불나비 떼

불꽃 제자들과 함께

염라대왕 앞에 선다

 

굴이 닫히고 있다 기약 없는

무공해 차를 기다리며

꿈의 엔진 무공해 차

피안의 그 세계는

어디에 존재할까

 

 

마력

 

꿀이었다가 독이었다가

생명이었다가 죽음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원수였다가

대나무였다가 갈대였다가

장미였다가 가시였다가

 

수천 년을 이어온 진실

그칠 날이 있을까

사막 위 오아시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생명수를 내 뿜는다

 

오늘은 울게 하고

내일은 웃게 하며

생사람 잡고 마는

요술 봉우리의 마력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끌어당긴다

 

요술 봉우리

잿빛 무덤 위에

빨갛게 핀 꽃망울

50m 파도 일으키며

심장에 내리 꽂힌다

50년이 무너져 내리는 듯

 

망설인다

따라가야 하나

무덤 위로 데려가나

무덤 속으로 데려가나

무덤, 두 무덤이 다가온다

 

 

비상

 

이른 아침도 아닌 밤인데 아침 햇살 빛난다

높은 나무에서 먹이를 찾는 독수리 눈빛

먹이를 찾아 뛰는 걸음 꿩처럼 빠르다

다시 뜨는 아침 햇살 골짝 그늘 밝힌다

 

노란색 물결 파도처럼 광화문 휩쓸며 희망을

노래한 그 자리에 벌거벗은 사람들 득실거린다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한 사람만 아니란다

벌거숭이 임금님 서울에 왔나보다

 

쉴 새 없이 찍는다 밤이 다가도록 찍는다

어둠을 찍는다 희망을 찍는다 수십만 사람들

밤을 낮 삼아 찍고 또 찍다보니 손 바닥만한 네모상자

요술 상자 되어 점점 커진다 어느 새 아파트 되었다

 

게 중에 났다고 하는 사람들 경찰관 소방관 아저씨들.

왁자지껄 무전기 소리에 깜짝 놀란 술 취한 사람들

경찰관 왔다고 반긴다 어느 새 경찰관 되어 버린 사람들

핸드폰 벨소리에 독수리 눈 반짝이며 어디론가 꿩처럼

달아난다 핸드폰 벨소리에 놀라 해바라기 된 가짜 경찰관

아저씨들 파란 하늘을 본다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편다

 

 

새만금

 

바벨탑을 무너뜨린 신의 음성 들린다

무섭다 바닷물 죽여 무덤을 만드는 인간

그 무덤에 누가 묻히나 바다인가 인간인가

보인다 자연의 육중한 음성 말을 한다

군산에서 부안 간 바다가 무덤 되어

우는 군산 앞바다 울음소리 인간의 귀를

틀어막는다 오래 전에 빠져 죽은 군산

앞바다 영혼들 무덤에서 빠져나와 춤

시위 벌인다 인간들 침 흘리며 죽어간다

나이트 단란주점 노래방 안마시술소 모텔

죽음의 그림자 말을 하는데 귀머거리 인간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한 채 게걸스레

먹고 마시며 춤춘다 식인 상어 웃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 손짓한다 무덤 찾아 떠나는

인간들 불쌍해서 바다가 편지를 보낸다

전령이 온다 이런 누가 이것을 볼 수 있으랴

죽은 자가 산 자의 말을 들을 수가 없구나

 

 

금 희

 

시베리아 바람도 숨죽이는 쌀쌀함

금붕어 비늘 같은 머리카락 물결

대나무 같이 큰 키, 도도함

아침이슬 같은 목소리

기암절벽 같은 콧날

눈 같은 이

별 같은 눈

구릿빛 얼굴

소녀

 

까까중머리

작달막한 키

코흘리개

시골뜨기

먼발치서

침만 삼킨

영혼을 흔들었다

 

신이 질투하여

별이 되어 버린 소녀

40년 동안 숙성되어

혜성처럼 귀향했다

천둥 번개가 치더니

심장은 합선을 일으켰다

가슴 깊이 박힌 문신,

금희

육화되어 화산처럼 솟구친다

 

 

찢겨진 철조망

 

용수철을 누르고 있는

태양, 호흡이 가쁘다

용수철이 기지개를 편다

럭비공이 튀기 시작한다

인어 젖가슴, 자석같이

불나비 떼 빨아들인다

 

태양이 공작 같은 날개를 펴자

바닷물이 자라처럼 납작 엎드린다

처녀의 젖가슴 같은 용수철

화들짝 놀라 몸을 웅크리며

럭비공을 불러들인다

인어 비늘이 벗겨진다

불나비 떼 죽어간다

 

망치소리 요란하다

천의 얼굴 말을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일진일퇴 공방전에

철조망은 찢겨지고

포로들은 늘어나도

 

찢겨진 철조망

럭비공 출입문

지켜야 할까

내버려 둘까

시소를 탄다

 

 

바람은 이렇게 분다

 

쥐가 외출을 시도한다

쥐구멍 출구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좌우로 흔들며 주위를 살핀다

귀를 쫑긋한다

눈알을 동서남북으로 굴린다

고양이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

심장이 박동한다

심호흡을 한다

기어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한 걸음에 달려간다

뒤를 돌아본다

고양이가 따라 오는지 살핀다

고양이는 없지만 외줄에 선 느낌이다

시계추처럼 주위를 살핀다

갈 때와는 다르게

할 걸음에 쥐구멍으로 돌아온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고양이를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해.

 

바람은 이렇게 분다

 

 

말뚝

 

땅속을 파고드는 발걸음

신음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비명

세계를 창조 하였다

병아리 두 마리가

이 세계에서 뛰어 논다

병아리가 세계를 확장하며

일곱 색깔 무지개를 피운다

무지개가 빛을 잃자

먹구름이 몰려와서

세계를 집어 삼킨다

세계를 창조한 말뚝

세계를 집어 삼킨다

말뚝을 빼려고 발버둥치지만

깊고 긴 시간

말뚝이 산화되어

 

 

전쟁의 폐허

 

참나무 소나무 싸리나무

키 큰 나무들 틈새에서

비키라고 소리치던 작은 풀꽃들

앙앙 재잘거리며 골짝에서 놀던

참새 뻐꾸기 부엉이

허벅지까지 차고 올라온 눈길

그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이 마을에 전쟁이 났네

초가집이 슬라브로

신작로가 아스팔트로

시골 색시는 시집을 가고

도시의 처녀가 시집을 오면서

시부모를 버리고

친정 부모를 데리고 왔네

 

전쟁에서 패한 마을

폐허가 되었네

혼수상태에 빠져

옛일은 기억도 못하네

혼수상태에 깨어

하는 말

네가 누구야

 

돌아서는 발길에 천근의 무게가

 

 

천하의 거짓말쟁이

 

보바리 부인

탁구공 튀듯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를 배웅하러 간

, 그녀를 찾지 못한다.

편지에서 말한

그 옷이 보이지 않는다

수십 통의 편지

만나기는 처음

그녀가 소리 질러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그녀를 찾지 못했을 듯

그녀와 대화 중에

별들이 눈앞으로 반짝 반짝 걸어간다

배신 충격 현기증 몽롱한 정신

기가 찬다

헛배가 부른다

터지려나

동강 상류 참나무 잎에

영글어진 이슬방울

얼굴

강원도 산간 지방 소녀

마음,

그 얼굴, 그 마음으로

봉이 김선달의 거짓말을

간이 부었다

사람이 싫다

사람을 믿지 말자

 

은희경, 천하의 거짓말쟁이

 

놀아난 나, 죽어간다

 

 

가면

 

둑이 터진

호수

본색을 드러낸다

 

달빛을 먹은 호수

연인들의 보금자리

지친이의 피난처

사랑을 싣던

 

호수

둑이 터져

본색을 드러낸다

 

쓰레기장

폐수처리장

호수의 본색

 

가면을 벗은 인간의 모습이다

 

 

코스모스 족보

 

작년에 보았던

시골길 코스모스

올해도 피었다

 

올해 본 코스모스

똑같은 모습으로

내년에도 피겠지

 

이 자리에

다른 꽃이

피어나게 할 수는 없을까

 

갈아 업고

다른 씨앗을 뿌려야 하겠지

다른 씨앗을 어떻게 구할까

 

코스모스의 족보

나를 깨운다

나를 갈아엎으라고

 

 

자궁의 기원

 

불볕 태양의 거친 몰매를

온 몸으로 막아 보금자리 만든다

품속으로 피신하는 자식들

넓은 팔로 안아 준다

불볕 태양의 거듭되는 몰매에

온 몸은 벌겋게 멍이 든다

그것을 즐기는 잔인한 자식들

단말마적인 어머니의 사랑

 

기력을 잃어

땅바닥에 흩날리자

마구 밟힌다

잔인한 자식들

마구 밟으며 희희낙락 한다

마지막 사랑의 불꽃

온 몸이 재로 변하여

천길 땅속에서 숨쉰다

 

천길 땅속의 사랑

자궁으로 환생하여

새 생명을 잉태한다

마지막 사랑의 결정체

자궁

시작이자 끝이며

끝이자 시작이다

 

 

삭풍의 사막

 

자식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자식들

세상 풍파에 시달린다

밟히고 차이고 태워지면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

 

나무에 매달린 다른 자식들

마지막 안간힘을 써본다

힘에 부친 듯

어미가 잡은 손을 놓는다

어미의 심장이 타들어간다

까맣게 타버린 심장

 

, , 딱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자식들을 다 보낸

황량한 몸뚱어리

핏기는 사라지고

홀연히 찬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귀환

 

거리 차량들의 경적 소리

고향 가는 소리

네가 먼저

내가 먼저

앞 다투는 경적 소리

멈추지 않는 소리

 

무서움을 이기려고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댄

전조등 불빛 모음들

어두움을 밀어내고

고향 길을 밝힌다

어서오라 반기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반기는 데

진작 그들은 모르고 있는 듯

차안에서 나누는 대화들엔

아버지 얘기는 별로 없다

빙긋이 웃으시는 아버지 눈엔

철부지 아이들만 보인다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

쿵 꽝 우당탕 꽝

예고 없이 들린다

아버지 목소리가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

세상을 울린다

 

 

검은 상복

 

문 안

사자들 엎드려 작열하는 빛을 받는다

태양의 열기를 받아 흐느끼는 울음소리

태양의 사도가 된 흰털의 사자들

백조의 세상을 꿈꾼다

 

문밖을 나오자

검은 털끝이 빳빳하다

 

피난처를 요청하며

사자에게 몰려든 백조들

사자의 발치서

고개를 조아린다

누가 더 흰색인가

백조들을 심판하는 사자

의기양양하다

 

배고픈 사자

백조 한 마리 집어 삼킨다

다른 백조들

사자의 그 모습에

박수를 치기도

도망을 치기도

 

사라져 버린 백조들

혼자 남은 사자

검은 상복을 입은 채

홀로 빈소를 지킨다

 

 

신의 나들이

 

물로 불로

하늘로 땅으로

남자로 여자로

동물로 식물로

삶으로 죽음으로

안개로 바람으로

부모로 자식으로

천둥으로 번개로

지상으로 지하로

자동차로 기차로

물고기로 곤충으로

별빛으로 달빛으로

태양으로 달무리로

봄여름가을겨울로

 

세상 만물이

신의 걸음걸이

신의 음성이고

신의 옷깃이다

시인들은 신의 사자들

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신의 언어를 해석한다

무한한 것을 가지나 무를 소유한 시인들

무한한 것을 소유한 신의 자태를 숨긴다

무한한 욕심쟁이 시인들

무한한 행복을 누리려고

무한한 세상을 지향한다

시인도 한갓 신의 한 가지 언어지만

언어의 역할에 행복을 느끼는 시인들

영원히 그들은 신의 사자로 남으리라

 

 

검은 상복

 

문 안

주인의 발아래 엎드린 흰 털의 사자들

태양의 열기를 받아 흐느끼는 울음소리

백조의 세상을 꿈꾼다

 

문밖을 나오자

털끝이 빳빳하다

 

피난처를 요청하며

사자에게 몰려든 백조들

사자의 발치서

고개를 조아린다

누가 더 흰색인가

백조들을 심판하는 사자

의기양양하다

 

배고픈 사자

백조 한 마리 집어 삼킨다

다른 백조들

사자의 그 모습에

박수를 치기도

도망을 가기도

 

사라져 버린 백조들

혼자 남은 사자

검은 상복을 입은 채

홀로 빈소를 지킨다

 

 

야간열차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야간열차

파김치 된 육체들을 실어 나른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핏덩어리 감싸고 있던

엄마의 자궁

삽과 노래와 칼의 피난처

어둠을 만들어

어른 된 아이들을 숨긴다

초록색으로 변장하는 개구리처럼

 

바다처럼 펼쳐진 밤의 치맛자락

수천 년 동안 삼켜 온 눈물 무늬,

탑승객 태운 야간열차를 품는다

 

한숨소리, 높은 산을 오르는 힘겨운 발자국 소리

기적소리, 희망이 다가왔다고 소리치는 소리

천 갈래의 엄마 소리

 

달빛도 잠 못 이루는 밤

 

 

아파트

 

저승사자의 엘리베이터

승차정원을 초과 한다

생명을 먹어드는 소리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장사진을 치는 사람들

 

오지 말라 떠밀어도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

매진되는 죽음 행 티켓

전 재산을 털어 거머쥐고

환한 미소 짓는다

 

종파마다 칸막이

다른 문패

크기가 다른 안치소

방을 비어두고

탑승객을 기다린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모형을 만들어

탑승객을 위로하는 저승사자

더 넓고 더 빠른

엘리베이터를 내려 보낸다

 

낮에는 앙상한 뼈대

밤에는 혼령의 불빛

자연을 먹어치운 이빨

방방곡곡에 그 모습

사람까지 먹는다

 

납골당 천국이 바로 내 곁에

 

 

죽음의 소리

 

임산부 태중

아기의 깊은 잠

세상 소리에 놀라

입이 열리고

 

아기를 지키는 궁

천년지기 수비수

접근 금지 긴 터널

태중의 아기 감싸며

 

열리지 않은 문, 해오름

열리고 있는 문, 어스름

자궁 속의 비밀

천년 아기 울음

 

꽃망울 터지자

지구를 흔드는

천둥소리

아기를 죽이는 소리

 

영원한 꽃망울을

볼 수 없는 세상

조산 아이 울음소리

늙어 가는 웃음소리

 

 

삭풍의 사막

 

자식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자식들

세상 풍파에 시달린다

밟히고 차이고 태워지면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

 

나무에 매달린 다른 자식들

마지막 안간힘을 써본다

힘에 부친 듯

어미가 잡은 손을 놓는다

어미의 심장이 타들어간다

까맣게 타버린 심장

 

, , 딱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자식들을 다 보낸

황량한 몸뚱어리

핏기는 사라지고

홀연히 찬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살인마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

사람이 좋아하는 식인종

 

죽기를 죽도록 좋아하는 살인마의 먹이들

오늘도 살인마의 손길에 고개를 조아린다

 

거리에도

지하철에도

버스에도

회사에도

강의실에도

집에도

동네방네

전국적으로

 

살인마의 먹이가 득실거린다

 

죽지 않는 살인마

형체가 없는 살인마

살인마를 죽일 약이 없다

 

멸종되지 않는 살인마의 먹이

살인마의 먹이를 양산하는 사람들

법으로 살인마를 보호해 주는 인간세상

 

세상이 미쳐간다

 

너도 미치고

나도 미치고

죽도록 죽고 싶어 환장하는 살인마의 먹이

 

그들은 지금도 살인마의 먹이 되기를 갈망한다

, 그들이 살인마의 먹이냐고 묻는다면

1차적으로 라깡이 힌트를 줄 것이다

 

 

 

마스터 키

 

논과 밭 야생 초목의 벌판들

울부짖는다, 내 목숨 돌려 달라고

 

철골, 콘크리트 벽이 하늘로

치솟고 광야를 덮으니

바지저고리 삼베 옷 고무신

벗어버리고

섬유질 껍데기 몸을 감싼다

 

몸속에 숨어 있던 구렁이

한 마리, 새끼를 친다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백 마리

입 안이 녹는다, 이 물질의 꿀맛

모든 건, 내 마음대로야

 

선홍빛 마스크 여우 웃음

물기 먹은 신록의 비늘

마술 젖 봉우리, 천년 역사

우물로 가는 긴 두 다리

불나비 떼 몰려온다

점령군처럼

 

구릿빛 얼굴 시골 처녀 옷깃엔

흙냄새 사라지고

주름 깊은 섬유질 원숭이 되어

고개를 조아린다

모든 건, 네 마음대로야

 

 

취객

 

새우등을 하고 고개를 숙인

그 사람

토사물에 바지를 적신다

 

큰 대()자로 누어버린

그 사람

길을 가던 달님이 멈추어

이불을 덮어준다

 

달님이 불을 밝히자

그 사람

얼굴이 만 갈래로

찢어진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 자식들의 형제로서

자식의 아버지, 그 자식의 어머니의 남편으로서

 

아래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

위에서 내려오는 열기에

 

파김치 되어

영양소가 소진된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하는 소리를 들은 듯

 

길 가던 사람들 몰려들고

사이렌 소리 사위를 흔들고

 

 

죽음을 모르는 눈

 

불빛을 따라 몰려드는

오징어 떼

백색의 몸뚱어리

 

구원자로 다가오는

불빛

앞 다투어 달려가는

오징어 떼

 

흰 몸뚱어리

자기 세계를 벗어나자

검은 빛을 띤다

 

죽음으로 가는 불빛

그것을 모르는

오징어 떼

그것의 눈은

 

인간의 그것이다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한 달 전에는 바짝 말라 있었고 일주일 전에는 옷이 너덜거렸으며 그제는 생기를 잃었고 어제는 거의 죽어 있었는데, 오늘은 눈이 반짝이고 얼굴이 화사하다 첫 눈에 금방 알아보질 못했다 옷도 갈아입었고 세수도 했나보다 애인이 생겼나 연애를 하나 했다 그 애의 밝은 모습을 보니 나도 주위 사람들도 기뻐하고 웃는 얼굴 되었다 매일 보고 또 본 애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천사의 선물을 받았나 우린 아무도 몰랐다, 그녀가 밤사이에 왔다간 사실을 그녀는 이따금 씩 우리를 놀리곤 한다 그녀가 왔다 갔을 땐 그 앤 항상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날아갈 듯한 몸짓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가 어제 저녁 우리 몰래 그 애를 만나고 간 모양이야, 그 애에게 사정없는 키스를 하고, 그 애의 몸뚱어리를 구석구석 애무하고, 그 애의 단단한 페니스를 입에 물고 간 모양이야, 그렇지 않고선 그 애의 표정이 이렇게 밝고 환할 수가 없거든 그 애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의 추측대로 그녀가 그 애에게 해주고 갔다면 우리도 똑같은 실험을 해볼까, 그 애에게 그 애, 바로 우리 집 앞산 말이야

 

 

원숭이

 

귀찮게 달려드는 원숭이 한 마리,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 아니지 세 마리 집집마다 원숭이 때문에 난리 법석을 떤다 집이 물에 떠내려가기도 하고 불에 타버리기도 하고 폭풍우에 날려가기도 하고 한 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은 원숭이 눈물을 흘린다 먹을 것 좀 줘 너희들만 먹지 말고 원숭이의 말이 들리는지 원숭이의 쪼그라든 살결 주름살 말라비틀어진 두 다리 두 손 새우등으로 말을 한다 나도 권리가 있어 목소리를 크게 내려 하지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너희들도 원숭이 자식들이야 너무 그러지마 희희낙락 떠드는 소리 자꾸 떠들면 밖에 버릴거야 누군가의 외치는 소리에 까르르 웃음이 왁자지껄 원숭이 평생을 일군 보금자리를 떠나 거리로 나오니 동료 원숭이들 거리에 바글바글 원숭이 세상이 되었다 아휴 징그러워 어디서 이런 원숭이들이 몰려들었지 소리치는 그 사내 언제부터인가 원숭이가 되어 버렸다 원숭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지하도를 메우고 사회문제 되었다 원숭이 다 잡아들일까 다 죽일까 그대로 내버려둘까 연일 법석을 떨더니 아무런 결론도 못 내린 채 원숭이의 새끼들 남골당 같은 그들만의 둥지에서 불을 밝힌다 불을 보고 달려드는 원숭이 새끼의 그 새끼들 온데간데없고 귀신들 발자국만 남았다

 

 

찢겨진 철조망

 

관능적인 용수철 용수철을 누르고

있는 태양 완전한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는 전쟁

중이다 호흡이 가빠진 용수철 기지개를

펴자 럭비공이 이리 홱 저리 홱

 

자궁 속에서 안락사

한 비명횡사 한 고발을 당해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골방에서 내통하고 와

시치미를 뚝 떼는

바람 쑤욱 빠져 쭈글쭈글 해진

 

럭비공

 

저 멀리

태양이 공작 날개를 쫙

펴니 솨아 솨아, 바닷물이 앞 다투어 납작 엎드리는

소리 엎드리는 그 소리 그 몸짓에 화들짝 놀란 용수철 덩달아

몸을 웅크리니 번데기와 다를 바 없네

뒤뚱뒤뚱 도망치는 럭비공 럭비공을

불러들인 용수철

반드시 다시 올 그 시간을 기약하네

 

어디선가 불나비 떼 죽어가는 우유

빛 비늘 벗겨지는 소리 시체 쌓이는

소리 사각사각 들리는 듯

 

망치소리 요란하고 천의 얼굴 말

하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일진일퇴 공방전에

철조망은 찢겨지고

포로들은 늘어나도

 

찢겨진 철조망 럭비공 출입문

지켜야 할까 내버려 둘까

시소를 타네

할미꽃

 

내 몸은 구멍 뚫린 에어탑

몽롱한 현기증 반딧불 되어 나른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밤안개

발목을 묶는다

 

너와 나의 충돌소리

자갈 빠개어지는 소리

불쑥 튀어 오른 돌출물에

내 몸 늪지대에 엎어진다

 

광야에 홀로 핀 할미꽃 찬 이슬 머금고

그 이름을 불러보지만 너만의 세계 따로

어릴 적 내 모습 그려 보는데 내 모습 너에게 박혀

내 모습 다시 꾸려 보지만 이미 그 씨앗 돋아 버려

 

달나라에 가서 별을 따오라니

내 마음, 숯덩이 되어 말을 한다

철길처럼 마주 걷고 있는 너와 나

따로 보이나 저 멀리는 하나

 

너는 너, 나는 나 슬픈 일

형형색색 꽃밭 일구는 그님 뜻

동서남북 없는 세상에

나침판이 생겼다

 

 

 

…… !

 

검둥이 한 마리

죽은 고양이 입에 물고

바쁜 걸음 옮긴다

함께 놀던 친구일까

 

바닷물이 삼키다 남은 백사장엔

죽은 고양이를 애무하며

뱅글뱅글 돌고 도는 검둥이

모래 무덤을 만든다

주둥이로

 

인간들이 하는 것처럼

동그란 봉우리를

고양이의 모래무덤

어디서 배웠을까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고

야릇한 울음소리

마지막 체취를

작별인사를

 

어디론가 떠나간다, 촘촘히

뒷모습 눈에 밟힌다

신기한 듯 고양이 무덤을

보고 또 보고

무슨 사이일까

 

…… !

 

 

불나비 떼

 

칠흑 같이 어두운 산중 속으로

떼 지은 차량 행렬

마음이 바쁘다

은밀한 문 속으로

숨죽이며 달린다

 

이 세상 속 저 세상

첩첩산중 야릇한 불야성

새 옷 새 빛 갈아입은 어두움

불나비 떼 반긴다

백주 같은 어두움엔

불꽃들이 만발하다

 

처절한 웃음소리 현란한 비늘

불나비 떼에 엉겨 붙는

만개한 불꽃들

차량 행렬 이글이글 집어 삼킨다

굴속, 자기 고향으로 들어간

차량 행렬, 엔진 소리 요란하다

 

잉태의 굴 폐허되어

불나비 떼 춤춘다

불꽃들의 향연

재가 된 불나비 떼

불꽃 제자들과 함께

염라대왕 앞에 선다

 

굴이 닫히고 있다 기약 없는

무공해 차를 기다리며

꿈의 엔진 무공해 차

피안의 그 세계는

어디에 존재할까

 

 

 

마력

 

꿀이었다가 독이었다가

생명이었다가 죽음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원수였다가

대나무였다가 갈대였다가

장미였다가 가시였다가

 

수천 년을 이어온 진실

그칠 날이 있을까

사막 위 오아시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생명수를 내 뿜는다

 

오늘은 울게 하고

내일은 웃게 하며

생사람 잡고 마는

요술 봉우리의 마력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끌어당긴다

 

요술 봉우리

잿빛 무덤 위에

빨갛게 핀 꽃망울

오십 미터 파도 일으키며

심장에 내리 꽂힌다

오십년이 무너져 내리는 듯

 

망설인다

따라가야 하나

무덤 위로 데려가나

무덤 속으로 데려가나

무덤, 두 무덤이 다가온다

 

 

말뚝

 

땅속을 파고드는 발걸음

신음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비명

세계를 창조 하였다

병아리 두 마리가

이 세계에서 뛰어 논다

병아리가 세계를 확장하며

일곱 색깔 무지개를 피운다

무지개가 빛을 잃자

먹구름은 몰려오고

세계를 창조한 말뚝

세계를 집어 삼킨다

말뚝을 빼려고 발버둥치지만

깊고 긴 시간

말뚝이 산화되어

 

 

 

자궁의 기원

 

불볕 태양의 거친 몰매를

온 몸으로 막아 보금자리 만든다

품속으로 피신하는 자식들

넓은 팔로 안아 준다

불볕 태양의 거듭되는 몰매에

온 몸은 벌겋게 멍이 든다

그것을 즐기는 잔인한 자식들

단말마적인 어머니의 사랑

 

기력을 잃어

땅바닥에 흩날리자

마구 밟힌다

잔인한 자식들

마구 밟으며 희희낙락 한다

마지막 사랑의 불꽃

온 몸이 재로 변하여

천길 땅속에서 숨쉰다

 

천길 땅속의 사랑

자궁으로 환생하여

새 생명을 잉태한다

마지막 사랑의 결정체

자궁

시작이자 끝이며

끝이자 시작이다

 

 

 

삭풍의 사막

 

자식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자식들

세상 풍파에 시달린다

밟히고 차이고 태워지면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

 

나무에 매달린 다른 자식들

마지막 안간힘을 써본다

힘에 부친 듯

어미가 잡은 손을 놓는다

어미의 심장이 타들어간다

까맣게 타버린 심장

 

, , 딱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자식들을 다 보낸

황량한 몸뚱어리

핏기는 사라지고

홀연히 찬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마스터 키

 

논과 밭 야생 초목의 벌판들

울부짖는다, 내 목숨 돌려 달라고

 

철골, 콘크리트 벽이 하늘로

치솟고 광야를 덮으니

바지저고리 삼베 옷 고무신

벗어버리고

섬유질 껍데기 몸을 감싼다

 

몸속에 숨어 있던 구렁이

한 마리, 새끼를 친다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백 마리

입 안이 녹는다, 이 물질의 꿀맛

모든 건, 내 마음대로야

 

선홍빛 마스크 여우 웃음

물기 먹은 신록의 비늘

마술 젖 봉우리, 천년 역사

우물로 가는 긴 두 다리

불나비 떼 몰려온다

점령군처럼

 

구릿빛 얼굴 시골 처녀 옷깃엔

흙냄새 사라지고

주름 깊은 섬유질 원숭이 되어

고개를 조아린다

모든 건, 네 마음대로야

 

 

 

죽음의 소리

 

임산부 태중

아기의 깊은 잠

세상 소리에 놀라

입이 열리고

 

아기를 지키는 궁

천년지기 수비수

접근 금지 긴 터널

태중의 아기 감싸며

 

열리지 않은 문, 해오름

열리고 있는 문, 어스름

자궁 속의 비밀

천년 아기 울음

 

꽃망울 터지자

지구를 흔드는

천둥소리

아기를 죽이는 소리

 

영원한 꽃망울을

볼 수 없는 세상

조산 아이 울음소리

늙어 가는 웃음소리

 

 

 

아파트

 

저승사자의 엘리베이터

승차정원을 초과 한다

생명을 먹어드는 소리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장사진을 치는 사람들

 

오지 말라 떠밀어도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

매진되는 죽음 행 티켓

전 재산을 털어 거머쥐고

환한 미소 짓는다

 

종파마다 칸막이

다른 문패

크기가 다른 안치소

방을 비우고

탑승객을 기다린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모형을 만들어

탑승객을 위로하는 저승사자

더 넓고 더 빠른

엘리베이터를 내려 보낸다

 

낮에는 앙상한 뼈대

밤에는 혼령의 불빛

자연을 먹어치운 이빨

방방곡곡에 그 모습

사람까지 먹는다

 

납골당 천국이 바로 내 곁에

 

 

 

검은 상복

 

문 안

주인의 발아래 엎드린 흰 털의 사자들

태양의 열기를 받아 흐느끼는 울음소리

백조의 세상을 꿈꾼다

 

문밖을 나오자

털끝이 빳빳하다

 

피난처를 요청하며

사자에게 몰려든 백조들

사자의 발치서

고개를 조아린다

누가 더 흰색인가

백조들을 심판하는 사자

의기양양하다

 

배고픈 사자

백조 한 마리 집어 삼킨다

다른 백조들

사자의 그 모습에

박수를 치기도

도망을 가기도

 

사라져 버린 백조들

혼자 남은 사자

검은 상복을 입은 채

홀로 빈소를 지킨다

 

 

 

 

아지랑이 되어

내 앞에 아른거린다

영원한 동반자로서

 

박쥐 되어 찾아와 엉겨 붙는다

빛에 놀라 도망간 그 자리

불타버린 잔해 모습

가고 싶지 않은

선 너머

돌아가라!

네 굴속으로

 

선 위를 걷고 싶다

선 넘기 일 센티미터

선위를

, 나를 데려가 다오!

아지랑이 고향으로

 

 

찢겨진 철조망

 

저녁 어스름

태양의 자식들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제 서야 문밖을 나서는 똑같은 얼굴들

애초엔 열리지 않았던 문

태초부터 자동문 되어 럭비공 출입하네

 

자동문의 핵심 장치는 용수철

저녁 어스름에 용수철은 튕겨져 오르고

럭비공이 이리 홱 저리 홱

전쟁은 시작된다 완전한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는 전쟁이

 

자궁 속에서 안락사 한 길거리에서 비명횡사 한

고발을 당해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골방에서 내통하고 와 시치미를 뚝 떼는

바람 쑤욱 빠져 쭈글쭈글 해진

 

럭비공

 

저 멀리 태양이 공작 날개를 쫙 펴니 쏴아, 쏴아

바닷물이 앞 다투어 납작 엎드리는 소리 엎드리는

소리 몸짓에 화들짝 놀란 용수철 덩달아 몸을

웅크리니 번데기와 다를 바 없네

뒤뚱뒤뚱 도망치는 럭비공

자동문은 닫히고 어디선가 불나비 떼 죽어가는

시체 쌓이는 소리 사각사각 들리는 듯

 

망치소리 요란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진일퇴 공방전에

철조망은 찢겨지고

포로들은 늘어나네

 

찢겨진 철조망 럭비공 출입문

지켜야 할까 내버려 둘까 기로에선

두 모습 한 얼굴 바글바글

 

 

 

보증금을 돌려 줘

 

어느 교차로

저승에서 달려 온 불빛 사방에서 비추고

염라대왕 사신들을 영접하는 발소리

뚜벅 뚜벅 들리는데

 

차가운 물건 하나 누워있다

영혼은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고

낭자한 피 흐트러진 사지 고개틀린 몸뚱어리

영묘(靈妙)한 힘을 가진 무리의 우두머리는

송장으로 화하는 밤

송장들의 파티에서

송장들이 부르는 노래

 

영장(靈長)이 어디 있는가

 

신에게 전세금을 주고

영장으로 화한

교차로의 물건 하나

보증금을 돌려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신은 도둑이다

외치는 소리

사람들은 몰려가고

울부짖는 소리

 

내 보증금 돌려줘

 

신의 음성 들려온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내 허락받지 않고 마음대로

고친 집

원상복구 시켜 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당신의 집

청소할 날 멀지 않았네

 

 

 

흡혈귀

 

붉은 피

밤하늘에 떠 있는 붉은 피

흡혈귀가 지나가는 길

만물이 잠들어 있는 밤

먹잇감을 노린다

 

손목에 박힌 두개의 못

‘4’‘3’이 되어 긴장은 흐르고

균형을 잃어버린 그 몸

높은 곳만 바라보네

완전했던 몸이 기형되는 순간

흡혈귀 되었나

 

흡혈귀 늘어나자

경고를 보내는 사자

네 마리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

그 울음소리 천지를 진동하네

 

우르르 쾅 우르르 쾅쾅

 

하늘을 가르는 빛줄기

캄캄한 밤을 환하게 비추자

흡혈귀는 도망가는 데

 

숨죽이는 사람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흡혈귀를 다시 찾네

 

번지를 잘 못 찾은 듯

 

 

 

, 태극 전사가 두려워지는

 

사각 사각 부엌 칼 가는

심장에 내려 꽂이는 으으-

손 씻는 물 내려가는, 사라지는 나서는

보험사 뒷문을 살짝 쪼개는 안해,

환영은 얼씬 얼씬, 너 미쳤니 하는 또 다른 환영

스르륵 문 여는 소리 후다닥 두들기던 자판은

곤두박질 백색 화면에 잉태되던 문장들

갈라지고 파란 창으로 숨어 들어가는 밤

집안에 떠 있던 해 사라지며

 

지금 뭐라고 썼어 욧! ?

 

떡갈나무 잎에 구르는 이슬방울 같은 목소리 그

목소리가 추억되는 밤 빨래판 두들기던 뭉툭한 방망이

또 다시 이마를 내리치는 아,

왜 이러나 하다가도

하다가도 무덤 속으로 빠져들고

꼭지에서 흐른 동록의 물 목구멍을 적시네

집안에 떠 있던 해 사라지며 또 다시

 

수리하고 써 욧! ?

 

사막을 걸어가던 사철나무 한 그루 오아시스를 만나

환한 얼굴로 입을 벌리는 데 태극 전사의 목소리 발자국

소리 터벅터벅 지척이네 돌아봐도

돌아봐도 빠져나갈 곳은 없는 듯 막다른 골목길

담벼락 올라 눈을 감고 몸을 던지는 데

 

어디로 가 욧! ?

 

거리에 넘쳐나는 태극전사의 완전군장, 늠름한 행진,

무쇠 얼굴, 워카 발자국 소리에 소름이 끼쳐 고개를 돌리는데

태극 전사 신병들 나풀나풀 걸어가네 싱그러운

종아리, 전운 없는 얼굴, 오아시스의 요람을 드러내면서

어디선가 몰려오는 데모대의 함성소리

군인들은 물러가고 평화를 돌려다오

계엄령을 해제하고 자유정부 갖게 하라

 

 

 

고향 생각

 

캄캄한 사위

혼자 있다 싶었는데 누군가

달려와 내미는 손 언젠가 잡았던 잊었는데

잊으려고 했다가도 돌아와 보면 항상 그 자리에

 

아스팔트 도로 신식 건물 아래로 묻히며

잘 가라고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야속하다 말 대신에

웃음으로 화답하던 얼굴

 

다신 못 볼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환생하여 환한 얼굴을 당신은

당신은 눈을 감을 수 없나 봐요

바벨탑을 올라가는 나 때문에

 

다시 돌아와 당신을 찾는

겸연쩍은 마음 고개 숙여 외면하려

해도 당신의 냄새 나를 돌려 세우는군요

아늑한 저 시간 속 길동무 당신은

 

겨울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던

바벨탑 행렬 속의, 한가위 밝은 달

새벽 기계음 차에서 내리던 나를

마중한 당신의 이름은

코스모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파란 불에서 주황색으로 바뀌는 신호등

우르르 앞 다투어 달려 나가는 사람들

우물쭈물 오른 편을 보는 왼편을

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 에라 모르겠다

내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외치는 듯

덩달아 따라 나서다가

나서다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치네

 

눈치 보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듯

빨간불이 들어오고

앞 다투어 달려 나갔던 사람들은

이미 도로 저편으로 다 건너가는

건너가는 그 사이 파란불은 들어오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신호체계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호통 치는 사람들 당황한 표정으로

저 멀리 달려 나간 사람들을 쫓아보지만

그들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덕 선생님의 애절한 목소리

 

교통법규 준수는 생명을 지키는 것

 

 

 

교차로에서 생긴 일

 

북쪽으로 가면 문산 서쪽으로 가면 일산

동쪽으로 가면 서울 남쪽으로 가면 공항

 

동서로 이어지는 넓은 길 남북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 너도 나도 동서로 가고 싶어 경쟁하는

 

넓은 길은 더 넓게 사람들은 더욱 밀려들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 일부는 북쪽에서 일부는 공항에서

웃음꽃을 피우는데 나는 나는 갈테야 동쪽으로 서쪽으로

 

했던 사람들 뒤늦게 좁은 문으로 승차하려는 듯

무임승차하지 마 외치는 소리 좁은 문에 사람들은

 

몰려들고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 샛길로

빠지는 데 길이 막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앉은 그 모습은 패잔병 일어나려고

일러나려고 애를 써보지만 쉽지를 않네

 

 

 

어느 시인의 고백 1

 

겨울바람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뚱어리를 스치고

떠나간 자식들은 돌아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니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버린 지금 외로워 보이니 반문을 하다가도

하다가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차라리 이대로가 좋아, 하고

외치는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혼자 있기를 즐기는

 

한때는 내 몸뚱어리에 대못을 때로는 잔못을 박고 매달렸던

자식들 대지로부터 받은 생명수를 서로 빨아 먹겠다고 아우성

치더니 어느 새 나 홀로 남겨 놓고서 죽음의 나라로 가는

자식들 세상은 그들을 밟고서 희희나락 하는 데 뿌지직 팔다리

한 짝씩 맥없이 떨어져 나가는 어느 화덕에서 불을 뿜는

 

재가 되어 사람들 이마에 뿌려지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사제의 외침소리에 나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래,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어느 시인의 고백 2

 

난 죽는 줄 알았어, 심장을 쿡 찍어 누르더니

가슴 밖으로 심장을 떠내는 굴삭기의 아가리를

자궁에 폭약을 밀어 넣고 불을 붙이는 짐승들의

흉악한 얼굴을 보면서 꼭 사람들 하는 짓 같구나,

하고 생각 중인데 짐승도 짐승 나름이란 걸 알았어,

내 사타구니에 폭약을 밀어 넣는 짐승들의 짓거리를

보더니만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라고 덤벼들던 그

착한 짐승은 일년 동안 물만 먹고 살더니 짐승들이

주는 독약을 먹고 죽었지, 난 그 짐승을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시키려는데 살아 있었어, 나를 보더니 끊어졌던

맥박이 박동하는 거야, 살아 있는 것들은 살아 있는 것들

끼리 통했던 거야, 난 그 짐승을 데리고 왔어, 내 곁에 살도록

하기 위해, 그 짐승을 짐승의 세상에 내버려 둔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란 걸 알았거든, 어떻게 짐승들이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는지

지금도 짐승들은 그 짓거리를 멈출 줄 몰라 내 입속에

자갈을 물리고서 사타구니에 폭약을 집어넣는 엉덩이

깊숙한 곳으로 심지를 쑥 밀어 넣고 불을 붙이는

난 사정없이 집어 삼키고 내 뱉기를 반복했어,

인간 같은 짐승들은 저 멀리 도망가다가

가다가 숨이 다할 거야, 내가 독약을 탔거든

 

 

 

로또 맛()

 

로또 맛을 본 흡혈귀 무리들 다른 흡혈귀들을 죽이기 위해

한 방을 날리네 한 방으로 벼락부자가 된 기억이 새록새록

또 다시 한 방을 날리는데 피를 생산하는 어린 양들

대답이 없다네

 

어린 양들을 향해 노망들었다 핀잔을 하는데

너 미쳤니 화들짝 놀라는 흡혈귀 한 마리

피가 모자라 날뛰는 진짜로 노망이 든 다른 흡혈귀의

과혈증을 탓하는 소리 허공을 울리네

 

이제 로또는 없어 로또 당첨 한 번으로 족해

외치는 흡혈귀 무리들 어린 양들의 피를 빨아먹을

단 꿈에 젖어 있네 로또 맛()에 취해 허둥거린 지난 세월

어린 양들은 알고 있는 듯

 

한 번 배불리 먹고 피를 빨리더라도

빨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마음을 먹은 듯

껌벅이는 두 눈동자 허공을 바라보네

한 방을 맞아도 맞지 않은 눈빛으로

 

한 방이 헛방이라고 헛방을 치는

흡혈귀의 무리들 몰려오고

로또 맛()은 사라지는

캄캄한 밤 달빛으로 화하는 어린 양들의 핏물들